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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개미 행렬엔 왜 교통 정체가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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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구 상동교 주변도로에서 차들이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나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는 차 1대 당 약 1.5초가 걸린다고 설명한다. 즉, 내 차가 신호등 바로 앞 차로부터 열 번째 자리에 있다면 약 15초 이내에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중앙포토]

정체학
니시나리 가쓰히로 지음
이현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304쪽, 1만5000원

전쟁을 연구하는 학문을 흔히 평화학으로 부른다. 전쟁의 원인을 알면 평화를 지키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 도쿄대 첨단과학 기술연구센터 교수인 지은이가 흐름이 막히는 원인을 파악하는 정체학(停滯學)을 개척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교통 정체 원인을 밝히면 차량 흐름이 한층 원활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주변은 정체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더디게 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속이 터진 경험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뻥 뚫린 듯한 항공로에서도 교통 정체가 있다니 원 참. 정체는 우리의 시간과 돈을 앗아간다. 교통 체증 하나로 인한 경제손실이 일본에선 정부예산의 7분의 1인 12조엔(약 120조원), 한국에선 약 8%인 30조원에 이른다.

 인터넷 정체도 만만치 않다. 빌 게이츠는 매일 400만 통 이상의 e-메일을 받는데 대부분 스팸메일이라고 한다. 스팸메일처럼 쓸 데 없는 데이터만 없애면 인터넷 정체를 상당수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산불이 더디게 번지는 것 같은 유용한 정체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체는 풀어야 할 숙제다.

지은이는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 중 하나가 개미의 지혜다. 오솔길에 과자나 사탕을 놓으면 개미들이 떼로 몰려든다. 그런데 먹이와 집 사이를 오가는 개미 행렬은 누군가 줄이라도 그은 듯 반듯하기 이를 데 없다. 정체 따윈 보이지도 않는다 . 페로몬의 덕분이다.

니시나리 가쓰히로

 체내에서 분비돼 그 개체에만 작용하는 호르몬과 달리 페로몬은 체외로 분비돼 다른 개체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이다. 페로몬은 이성의 사랑을 부르는 ‘성호르몬’이 유명하지만 ‘길 안내 페로몬’과 ‘경보 페로몬’도 있다. 재미난 것은 페로몬을 따라 이동하는 개미가 많아 길이 혼잡해질수록 속도가 오히려 증가한다는 점이다. 페로몬은 휘발성이어서 개미끼리 거리가 짧으면 페로몬 잔류확률이 높아져 개미가 더 빨리 페로몬 냄새를 맡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를 다양하게 활용하면 교통 체증을 해결하는 최첨단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지은이의 기대다.

 사실 개미의 지혜 중에는 인간이 실용화한 것도 적지 않다. 이번 월드컵부터 프리킥 때 차는 자리나 수비수의 최전방 위치에 몇 분 뒤에 사라지는 휘발성 페인트를 뿌리고 있는데 바로 페로몬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길 안내 페로몬은 휘발성 물질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길 안내 페로몬을 뿌린다고 개미들이 움직이진 않는다. 개미들은 이를 지면에 묻히기 전에 지면에 바로 흡수되지 않도록 왁스 역할을 하는 탄화수소도 함께 뿌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교토공예섬유대학의 야마오카 료헤이 교수의 연구로 밝혀졌다. 재미난 것은 야마오카 교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인 ‘8월의 광시곡’ 촬영을 도와주다 이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개미들이 줄을 지어 장미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필요했는데 길 안내 페로몬을 묻혀도 개미들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탄화수소의 역할을 찾아냈다.

 이 탄화수소는 개미에게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같은 개미집에 사는 개미들은 몸단장을 하면서 이를 서로 발라준다. 그런데 개미집에 따라 화학조성이 달라 피아식별 물질로 이용할 수 있다. 경보 페로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눈이 어두운 개미들은 광학 대신 이처럼 화학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지은이는 이처럼 시스템 공학을 넘어 수학·물리·화학·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을 융·복합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정체 해결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상의 한계와 학문간 벽을 뛰어넘자는 이야기다.

채인택 논설위원

[S BOX] 고속도로, 어느 차선이 빠를까

고속도로는 추월차선과 주행차선, 두 개 차선으로 이뤄지는 게 기본이다. 이중 어떤 차선을 이용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지은이는 고속도로 통행량 조사를 바탕으로 보통은 추월차선 쪽이 낫지만 정체 시에는 주행차선이 약간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차량 밀도가 낮을 때는 대부분의 차가 교통법규에 따라 주행차선을 달리기 때문이다. 반면 차량이 많아지면 주행차선을 달리는 차량이 줄고 그만큼 추월차선으로 옮긴다. 인간 심리 때문이다. 차간 거리가 줄면 운전자는 추월차선으로 달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추월차선으로 차량이 몰려 속도가 떨어진다.

3개 차선으로 이뤄진 고속도로는 다르다. 보통은 가운데 차선에 차량이 가장 많다. 하지만 운행 차량이 늘수록 추월차선으로 옮기는 차가 증가한다.

주행차선을 달리는 차량이 확 줄었다면 정체가 곧 시작된다는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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