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소련의 화해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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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소 「화해회담」에의 합의가 과연 어떤 양상과 결과를 수반할 것인지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양측이 국경분쟁·경제교류·친선협력등 제반문제에 관해 외교협상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관심은 크지 않을수 없다.
50년대 후반과 60대초반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중·소대립은 애당초 「후루시초프」와 모택동사이의 이념적 대립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후 그 대립은 양측간의 국가적 대립·민족적 혐오감·국경분쟁·무력충돌의 양상으로까지 파급되었다.
모택동의 중공은 「스탈린」사후 소련이 지향해 온 관리사회「모델」을 반대하고, 이른바 홍(사상성)에 역점을 둔「코뮌」형 사회를 보다 중시했다.
이에따라 중·소간의 대립은 원리적인 차이와 체제적인 분열로까지 굳어져갔고, 중공은 소련을 『미국보다 더 위험한 적』이라고 규정하여 중·소동맹 대신 미·일·중공 접근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택동사후에 4인조가 실각하고 등소평이 재등장하그 부터 모사상의 절대성은 급속히 퇴조하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모사상과 그의 체제는 등소평이 지향하는 근대화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그 중공의 경제계획 내용과 관리방식 및 군사정책도 「인민공사」식의 원시생을 탈피하려는듯한 징후를 나타냈다.
경제면과 군사면을 비롯한 전반적 국가관리면에서 「인민공사식」이나 「모택동식」이 퇴조해간다는 것은 곧 중공의 공산주의가 유형상으로 다시 소련형의 공산주의와 유사성을 띠어가고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두나라의 체제유형이 다시 비슷해져갈 때 양측간의 대립은 이념적·원리적인 차원으로부터 다분히 현실적인 차원으로 격하 되기가 쉽다.
현실적인 분쟁이란 피차 용의만있다면 국제법과 외교협상 방식에 의해 적당히 조정되는 것이 전연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점에서 중·소가 최소한 하나의 국가대 국가로서의 국제법상의 정상관계를 정착시키는 것은 적어도 논리상으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중·소가 설사 화해를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자』는 것이지, 다시 옛날같은 일체성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볼만한 이유도 여전히 상존한다.
국가이재면에서나 등자신의 권력의 온존을 위해 또는 미·일과의 접근에서 오는 여러가지 경제적·전략적, 이점에 비추어 등이 이제와서 갑자기 기존노선을 전면뒤엎어야할 필요와 조건은 크지 않은 것이다.
중·소회담은 이 양쪽의 개연성을 동시에 다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만큼 서방측으로서는 그 어느 경우에라도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처방안을 준비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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