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탄압 아무리드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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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유자주개발 30%」는 일본의 오랜 숙원이다. 45년 종전직후의 1백%「메이저」의존이 30여년만인 지금은 74% 의존으로 크게 줄어「30% 자주개발」의 꿈은 거의 달성되어 가고 있다. 이를 가능케한 첫점컬은 한국전쟁.
종전직후 연합군총사령부는「메이저」와 총모, 일본에 대한 원유공급·판매권율 모두「메이저」에 일임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석유수요가 급증하게되자 일본상사에도 석유제품 수입을 허가했다.
일본정부는 물실호기의 이기회를 이용, 민족의식이 가장 강한「이데미쓰」흥산으로 하여금「이란」과 직접 원유도입계약을 맺도록 종용했다.
경제안정븐부장관(주동영웅) 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당시「이란」은「모사테크」수상의 석유국유화조치로 영국과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빠져 있었고 재정파탄을 막기위해 판매할 대장을 찾기에 헐안이었다.
그러나 BP는『「이란」의 원유판매권은 BP손에 있고 따라서 제3국이「이란」정부와 직접 원유거래룰 할 경우에는 BP의 권리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적인 경고를 각국에 통고했다.
이경고를 무시하고 직접「이란」과 거래한「이탈리아」·「스위TM」합작회사의 유조선 「로즈마티」호는「아라비아」앞바다에서 영국군에 의해 나포되기도 했다.
이같은 험악한 정세속에서도「이데미쓰」전산은 l백28만「배럴」을 실어왔다.「이데미쓰」 사주인「이데미쓰·사조」(출광주삼)씨는 당시 영국군에 의한 지뢰투하가 가장 두려웠다고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서 몸서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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