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해방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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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날 오전 거리 곳곳에 방이 나붙었다. '금일 정오 중대 방송, 1억 국민 필청(必聽)'. 이윽고 정오가 되자 라디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로 시작하는 히로히토(裕仁)일왕의 종전 조서였다. 1945년 8월 15일, 불과 4분10초 동안의 항복 방송으로 36년간 우리를 옥죄어온 식민지 압제의 사슬이 끊겼다.

일본의 패망 소식에 시민들은 너도나도 거리로 뛰쳐나왔다. 동요작가 윤석중 선생은 당시 상황을 '해방의 날/서울 장안에 태극기가 물결쳤다/옥에 갇혔던 이들이/인력거로 츄럭으로 풀려나올 제/종로 인경은 목이 메어 울지를 못했다…'고 읊었다.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감동과 환희로 뒤덮인 날이 또 있을까.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처럼 가슴 뭉클한 해방이지만 전쟁이란 말이 붙으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역사상 거저 얻는 해방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투쟁을 통해 해방은 쟁취됐다. 역으로 모든 전쟁은 해방전쟁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6.25가 민족해방 전쟁이라는 억지에 이르면 해방은 썰렁한 농담이 된다.

블레어 영국 총리가 엊그제 이번 이라크전쟁을 해방전쟁으로 정의했다. 적어도 CNN이나 BBC방송의 화면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바스라 시민이나 북부 쿠르드족의 표정엔 후세인의 탄압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됐다는 안도감이 가득하다.

이를 지켜보면서 58년 전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 든다. 제 손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한 게 그렇고, 군정(軍政)을 실시하는 것도 그렇다. 단지 하지 중장이 프랭크스 대장이나 가너 예비역 중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의 3연방으로 나라를 나누려는 구상도 닮았다. 그래선지 미국의 장담처럼 '민주 이라크'의 장래가 장밋빛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해방인지 또다른 속박인지는 결국 이라크인 손에 달렸다.

어쨌든 그간 참전.반전으로 나뉘어 다투던 우리는 이제 그 열기를 이라크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쏟을 때다. 연합군 병사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이나 물통에 환호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바로 반세기 전 우리 모습이 아닌가.

참전으로 인한 아랍권의 반한 분위기를 씻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해방된' 이라크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아살람 알라이쿰!

유재식 베를린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