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안보 공백기 군기 문란 드러낸 총기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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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일반전초(GOP) 소초에서 21일 임모 병장이 동료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최소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무장탈영한 임 병장이 추적대와 대치해 총격전까지 벌여 인근 민간인들도 긴급 대피했다. 북한군과 24시간 대치하는 최전방에서 벌어진 엄청난 총기사고에 우리 사회는 불안감을 누를 수 없다.

 이번 사고는 한민구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사이 터졌다. 장관 업무를 겸직 중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사고 수습과 상황관리를 총괄하고 있다고 해도, 하마터면 국방장관 공백 상태에서 비상사태를 맞을 뻔했다.

 병사가 동료를 상대로 수류탄 투척과 총기 난사에 이어 도주할 때까지 군 당국이 제대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의 허술한 초동대응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대 배치 이후 한때 A급 관심사병으로 분류됐던 병사가 GOP에서 무기와 탄약을 들고 근무하다 이런 사고를 냈다는 점은 다시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문제는 인성검사와 관심병사에 대한 관리다. 자대 배치 직후 인성검사에서 특별관리 대상인 A급을 받은 임 병장은 지휘관의 판단 아래 수시 검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GOP 배치 직전인 지난해 11월 분기별로 진행되는 정기검사에서 B급으로 하향 조정돼 GOP에 배치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혹시 군의 요식적인 인성검사가 미리 방지할 수 있었던 총기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군 당국은 뒤늦게라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필요하면 수사 과정에 민간 전문가와 피해자 부모까지 참여시켜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명백한 문제점이 도출되면 군 인성검사와 병사 관리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도 확실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GOP에서 임관 1년차인 소위가 지휘관을 맡는 것도 문제다. 북한과 직접 대치하며 무기와 탄약을 들고 실전 상황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경험이 적은 소위급으로선 혈기왕성한 병사들을 통제·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GP의 경우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군의 530 GP 총기난사 사고 이후 경험이 있는 중위급이 소대장으로 배치되고 있다.

 군은 철저한 자기 반성 아래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번 총기사고로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따라서 군인 가족에 대한 신속한 안내와 체계 있는 확인 절차도 이번 기회에 다시 점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이므로 이에 걸맞은 민·군 간의 소통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고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한 상황 전파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