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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발 두툼 메밀 냉칼국수 깊은 국물맛에 정신 번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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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22면

1 메밀 냉칼국수. 하루 80인분 정도만 준비해서 판매한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면을 뽑아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만두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오래된 동네에는 대개 내력 있는 동네 맛집들이 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터를 잡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곳이다. 유명하고 화려한 식당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곳이지만 음식의 내공은 대부분 상당한 수준이다. 주인이 그저 열심히 한결같은 정성과 노력으로 음식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그렇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외면받아 그 동네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이고 진가를 알아본 외지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런 집들을 단골로 찾아들면서 아끼고 좋아한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39> 이북 음식 전문 성북동 ‘하단’

서울의 이런 동네 맛집들은 역사가 오래된 강북 쪽에 주로 많이 있었다. 재개발 때문에 하나씩 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 남아 있는 곳이 꽤 있다. 이런 소중한 곳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것은 맛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큰 기쁨 중 하나다.

성북동에 있는 ‘하단(下端)’이라는 작은 식당은 최근에 알게 된 ‘내력 있는 동네 맛집’ 중 하나다. 오랜 단골로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한성대 입구 역에서 성북동으로 올라가는 대로변에서 조금 벗어난 이면 도로에 숨어 있듯 자리 잡고 있다. 한적한 곳이어서 오다가다 들르는 뜨내기 손님들은 거의 없고 동네 주민들이나 단골들만 찾는 곳이다.

2, 3 하단 외부와 내부 사진 주영욱

이곳은 이북 음식 전문점이다. 1993년 현재 자리에서 시작했다. 이북 출신 어머니에게서 음식을 배운 윤후자(56) 사장이 직접 음식을 만들면서 가족들과 운영을 하고 있다. 윤 사장은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요정을 운영했던 고 김영환 여사가 이모 할머니라고 하니 음식 내력이 남다른 집안 출신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이북의 정통 음식들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하단’은 어머니의 고향인 평안남도 하단 지역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하단’의 음식은 맛이 깔끔하고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윤 사장이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자신의 성격이 워낙 철두철미한 스타일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고 직접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밑반찬이나 장류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

정성이 들어가면 음식은 맛이 있는 법이어서 이 집의 음식은 모두 맛이 있지만 특히 내가 인상 깊게 먹은 음식은 ‘메밀 냉칼국수’다. 평양 냉면과 이북식 막국수 만드는 법을 응용해서 윤 사장이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메밀을 밀가루와 섞어서 두툼한 칼국수 두께로 면을 뽑아내고, 양지머리 육수에 백김치 국물을 섞은 다음에 조선 간장으로 간을 해서 국물을 준비한다. 오이와 백김치, 무를 얇게 잘라 고명으로 얹어내면서 얇게 다진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깨소금을 살살 뿌려서 마무리를 한다.

이렇게 만든 ‘냉 칼국수’는 무엇보다 시원하고 깊이가 있는 국물 맛이 일품이다. 너무 심심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맛이 아주 감칠맛이 있다. 유명하다는 평양 냉면 집에 갈 때면 국물 맛이 내 입맛에는 너무 밍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자주 있었는데 이 국수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윤 사장이 자신이 집에서 먹던 대로 국물에 조선 간장으로 마무리 간을 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평양 냉면의 육수 맛은 동치미나 백김치 국물 맛이 좌우한다고 하던데, 윤 사장의 백김치 맛이 특별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두툼하게 뽑아낸 메밀 가락은 푸짐하게 씹히는 느낌을 주면서 구수한 메밀 향을 더 잘 느끼게 해준다. 청양 고추 덕분에 전체적으로 칼칼한 맛이 나는데 그 매운맛 때문에 전체적으로 미각이 자극되어서 맛이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 먹고 난 다음에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이다.

종합하면, 여름철에 이 냉국수 한 그릇이면 나른하던 입맛도 찾고 더위도 싹 가시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귀한 별미다.

‘하단’으로 가는 길은 오래된 길이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키 재기 하듯이 늘어서 있고, ‘맹견주의’라고 쓴 손 글씨가 걸려 있는 한옥 집 대문 옆 담에서는 덩굴 장미 꽃이 밖을 내다보고 있는 곳이다. 어쩌다 접어든 외지 사람들은 차를 타고 지나가기 바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아직도 이 길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서로의 삶을 기대고 나누면서 살아간다. 이런 길도, ‘하단’ 같은 동네 맛집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있는다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하단 : 서울 성북구 성북동 184-40, 전화 02-764-5744. 쉬는 날 없이 영업한다. 점심 이후에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메밀 냉칼국수 8000원, 만둣국 8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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