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만의 귀성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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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명절이 다가오는 것은 역두의 풍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은 며칠째 귀성객들의 인파로 온통 술렁거리는 느낌이다.
교통당국의 추산에 따르면 구정의 귀성객은 무려 5백16만명이나 된다. 이들의 왕복회수로 치면 적어도 1천만명의 인구가 일시에 나들이를 하는 셈이다. 그것도 저마다 차를 타고가는 것이다.
서울에서만도 1백20여만명이 떠난다. 이들은 며칠 사이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가히 명절은「엑서더스」의 계절인 것을 알 수 있다. 올해만 그런것은 아니다. 연년세세로 겪는 연례행사다. 당국은 그 수가 20%썩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의 경우 8명가운데 한사람은 어디론가 떠나는 셈이다. 연인원으로 치면 네사람에 한명꼴이다.
연두에 늘어선 사람들의 연령을 보면 20대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심부름을 나온 젊은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차에 오를 사람들의 면면은 역시 20대가 주류를 이룬다.
새삼 도시비대를 실감할 수 있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무엇때문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서성거리는지 궁금하다. 도회지는 과연 이들에게 만족한 모든 것을 베풀고 있는지는 더욱 궁금하다.
5백만명의 귀성객이 평균 5천원씩을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그 돈은 무려 2백50억원에 달한다. 필경은 그 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것이다. 이많은 돈은 낭비일까, 생산일까.
더구나 이들이 차표를 사고, 또 기다리고, 오 가는 시간의 생산성을 생각하면 국민적인 낭비는 적지 않을것 같다.
고향을 찾는 일을 반드시 경제성만으로 셈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 또 무엇으로드 바꿀수 없는 「휴매니즘」의 단면이기도 하다.
문제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가에 있다. 이것은「휴매니즘」이전의 문제다. 이런 현상으로하여 도시는 모든 사람이 불변을 느껴야하는 악마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골은 시골대로 썰렁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시골에사는 사람들은 좌절과 실의를 맛보게 될것이다. 도시지향의 현상은 오히려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은 어느 때인가는 박제의 공작처럼 환상만을 갖게하는 고장으로 변할것 같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뭇하기 보다는 어딘지 삭막해 보이기만 하는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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