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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고등부 대상 김혜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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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원역 2번 출구 출렁이는 계단 속

흙 묻은 구둣발들 한바탕 지나간 뒤

갈퀴손 내밀고 있던 더벅머리 남자애

언젠가 냇가에서 보았던 개구리도

뻣뻣한 양손으로 물 아래 떠 있었다

물살을 떠밀 힘 없어 쓸려가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사이 들어찬 허연 밥물

저녁을 지으면서 사라진 개구리를,

동그란 조약돌 같던 머리통을 생각함

‘손’이라는 시제를 받아들고 김혜경(18·안양예고3)양은 수원역에서 마주친 한 소년을 떠올렸다. 계단 구석에 엎드린 소년이 행인을 향해 내밀고 있던 작은 손. 그리고 그 위로 할머니댁 근처 냇가에서 본 죽은 개구리의 갈퀴가 겹쳐졌다. “아직 꿈을 맘껏 펼쳐보지 못한 작은 존재들이잖아요.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없는….” 이렇게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정제된 시어 속에 담겼다.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전공하는 김양은 최근에야 시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스무 나무 아래 서른(서러운) 나그네가)’ 로 시작하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한시 등을 접하면서 옛 시와 시조에 담긴 정취가 맘을 움직였다.

 “시는 너무 자유로워 오히려 부담스럽고 막연한 측면이 있는데 시조는 최소한의 형식이 정해져 있다보니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시조의 매력을 알려주신 배은별·윤한로 선생님 덕분”이라고 밝힌 김양은 “앞으로 우리 말과 글을 열심히 파고들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심사평=전체적으로 진지한 시적 형상화의 노력이 돋보였다. 삶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적인 이해의 시선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럼에도 시조의 기본 형식을 이해하지 못해 시적 발상이 뛰어났음에도 입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학생다운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을 살려 창작에 매진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이우걸·장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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