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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한국 찾은 63세 입양아의 애환

미주중앙

입력

트레이시 라이트(왼쪽)과 아들 네이튼 라이트.
한국 고아원에서 두살 때 찍은 사진.

1952년 출생,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부산 이사벨 고아원 출신.

1955년 미국으로 입양된 후 오는 15일 처음으로 시카고아리랑라이온스클럽 한국방문 행사를 통해 12박 13일 동안 모국을 방문하는 트레이시 라이트(63) 씨가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11일 “여보세요”라며 전화를 받은 라이트 씨는 “한국에서의 기억이 별로 없지만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몇 개의 단어들을 기억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젓가락질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에 온 후 펜실베니아주 핼리팩스, 밀러스버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현재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Something Special’ 살롱 및 기프트 샵을 운영하는 라이트 씨는 “혼혈인, 입양인, 한국, 미국, 가족 등 내 삶의 모든 것이 특별하고 모든 입양인들은 사랑받기 마땅한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에 가게 이름을 ‘Something Special’로 지었다. 입양된 후 처음 가는 이번 모국 방문 또한 나에게는 ‘Something Special’하다”고 말했다.

1950년대 미군으로 한국에서의 복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백인 아버지와 어린 나이에 실수로 아이를 가져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생후 4개월 된 딸을 이웃집에 맡겨놓고 도망간 어머니. 라이트 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출생 이야기이다.

1953년 21세의 나이로 한국에 파병되어 한국 철도 시스템을 담당한 독일계 미국인 양아버지 밥 나스(Nace)는 황성택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같은 부대 군인들과 함께 황 목사가 운영하는 부산 이사벨 고아원을 방문해 종종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고른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를 골랐다”며 자신의 입양 과정을 설명한 라이트 씨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린 내가 밥을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고 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밥은 진짜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다고 결정했고 양어머니인 오플(Ople)은 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입양하기로 했다. 결국에는 수 많은 군인 중 내가 밥을 고른 것이고 밥은 나에게 선택받은 아버지”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나스 부부는 1953년 입양을 결심, 1954년 승인받았지만 해외 입양 쿼터제, 미국 비자 문제 등으로 인해 1955년 2월 5일 LA 공항에서 처음 ‘루스 자넷 나스(입양 당시 라이트씨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11살이 되던 해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라이트 씨는 “길고 힘들었던 비행이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한국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며 “당시 어린 내가 힘들었던 시간보다 나를 입양하기까지 입국이 거절된 비자를 다시 발급 받기 위해 하와이에서 워싱턴으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조했을 아버지와 내 사진을 보며 한없이 기다렸을 어머니에게 더 힘들고 긴 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품으로 데려온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나를 입양하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도움도 받고 미국 의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때 사람들이 해외 입양 첫 사례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었다고 전해들었다. 입양 사례가 없어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부모님은 해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이웃으로 이사온 한인 김덕영씨 부부로부터 ‘은주’라는 한국 이름을 선물 받았다는 라이트 씨는 “김 씨 부부를 만나고 한국 문화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독일계 미국인 집에서, 백인들 동네에서 자라면서 한국인을 접해보지 못해 가끔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김 씨 부부를 만나면서 모든 의문점이 풀렸다. 스킨십을 싫어하는 내가 그리고 가족들과 입맛이 조금 달랐던 나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제야 친부모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의 도움으로 한국 신문에 광고를 내고 DNA 검사를 했지만 친 아버지가 아이리시 미국인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라이트 씨는 “미국 공항에 발 디딘 후부터 몇 십년 동안 백인 부부에게 입양된 동양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유명인으로 살아왔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내 이야기가 공개되었고 이 후 몇년간 매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비싼 옷, 장난감 등을 받기도 했다. 또 한국 신문 광고 이후 한국인들에게 미안하다며 한국을 용서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입양인이라고해 나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입양은 축복이였고 내 삶은 감사의 연속이었다. 혼혈인이던 나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입양온 후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가족들의 사랑 속에 멋진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단 한 가지 후회가 되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일찍 친부모님과 한국 친척들에 대해 찾지 않은 것”이라며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남들에게서 듣는 한국이 아닌 나의 한국을 보고 싶고 부산을 방문해 지금은 학교로 변한 이사벨 고아원을 방문하고 싶다. 이번 한국 방문이 나에게는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이 될 것이며 무지개 끝은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은 소녀의 꿈이 현실이 되는 소중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카고아리랑라이온스클럽은 오는 14일 오전 11시 글렌뷰 블루스타 메모리얼 우즈 공원에서 한인 입양인 및 가족 초청 피크닉 겸 문화행사를 갖는다. 또 트레이시 라이트씨를 포함 총 12명의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15일부터 27일까지 한국 방문을 주최한다.

김민희 기자 minhee071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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