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종횡|성병욱 <본사논설위원><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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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로비·스캔들」그후
지난 2년간 그렇게도 미국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의 「로비·스캔들」은 이제 미국인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게 분명하다.
김동선 전주미대사의 서한이 미국상·하원 윤리위에 제출된 것은 9월 중순이었다. 그런데 도2주가 지나도록 그 내용은 고사하고 도착했다는 사실조차 미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로비· 스캔들」 을 파헤치는데 중추 역할을 해 왔던 미하원 윤리위의 「플린트」 위원장과 민주·공화당 간사들이 김동선 서한의 도착 사실과 내용을 극비에 붙이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전만 해도 미국의원들의 최대 인기 품목이었던 「로비·스캔들」에 관한 것을 의회가 극비에 붙이기로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를 그대로 넘겨버린 미국 언론의 태도야말로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려고만 들면 의회의 보안의 벽쯤 뚫지 못할리도 없는 미국 언론이 그 보안 조치를 존증한 배경은 무엇일까. 어쩌면 존중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무관심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한 관찰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미의회와 언론의 동향은 한국의 「로비· 스캔들」은 이쯤으로 끝내자는 미국민의 전반적인 「무드」를 반영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것 같다.
이제는 한국의 외교관과 교포들도 「로비· 스캔들」 의 홍역을 과거지사로 얘기할 여유를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로비· 스캔들」이 사건 자체로서 가라앉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서 한미관계가 종래의 존재 양식을 쉽사리 회복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이러한 전망에 대해 현지의 미국인과 한국인들의 반응도 대개는 회의적이다.
『종래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일반적으로 품고 있던 감정은 「도와주어야 할 불우한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 홍역을 치르면서 어딘가 경계해야 할 상대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미국의 외교가 궁극적으로는 국민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으로 이지러진 대한 「이미지」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겁니다.』
『 「로비· 스캔들」과 철군방침 결정 과정에서 보인 미국측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생겨난 한국측의 대미 불신과 악감정도 문제지요. 더욱이 최근에 팽배해진 한국인들의 자신감까지 겹쳐 미국이 안 도와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비약할 위험이 없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 그렇게 간단히 무시될 수 있을는지…』.
상대에 대한 서로의 감정과 양국 관계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크게 변화했다는 얘기들이었다.
더욱이 그러한 인식의 「갭」이 지금은 엄청날 정도로 현격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관계에서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양 국민간에 이지러진 「이미지」를 개선하고 인식의 「갭」을 메워 나가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이미지」 악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에 대한 국내의 평가가 좀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박동선씨나 통일교의 박보희씨 같은 사람은 본의는 어떻든 미국 사람들의 대한 감정을 악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애국자인양 행세하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열을 올리는 교민들이 많았다.
그래도 한미간에 공식적인 관계는 양국간에 정상회담 개최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다.
국내의 일반적인 느낌과는 달리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선 미국측이 더 적극적인 듯하다. 물론 미국의 적극성 속에는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보다도 그에 앞선 분위기 조성에 역점이 두어진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아뭏든 한미 관계도 이제는 별수 없이 철저히 현실적인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의 안보와 경제 성장에는 미국의 협력이 불가결하고, 미국도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전략이란 차원에서 한국을 자기편으로 확보해 두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있다.
싫든 좋든 두 나라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우호관계를 심화시켜 나가야 할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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