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민 「엘레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40대의 중년 가장이 식솔을 이끌고 미국 이민을 떠났다. 월남패망 이후의 일이다. 그는 「뉴욕」 에서 우선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새벽3시에 기상, 「웨곤」을 몰고 2백km떨어진 농장에 가서 야채를 받아 온다. 아침식사는 차중에서 「햄버거」로. 7시쯤 돌아와 이번엔 야채를 말끔히 다듬어 「비닐」주머니에 담는다. 하루 장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저녁9시나 되어야 가게는 문을 닫는다. 그러나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의 셈을 맞추고 또 내일의 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정이나 되어야 잠자리에 눕는다.새벽 3시는 잠깐이다. 이런 생활의 끝도 없는 반복. 그러고 그 댓가로서의 월 소득은 2천 「달러」.
그 중년의 가장은 서울에서 은행원을 했었다. 언필칭 「아이들의 교육」과 「내일의 평화」를 위해 이민을 떠났다.
그는 오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좀더 가면 그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요즘 김포공항에서 자주 보는「역이민」 현상은 글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 같다.이방에서 동양인은 끝내 동양인이다. 그는 얼굴의 빛깔도 빛깔이지만 마음의 빚깔이 본방인과 다른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한가지만으로 사회적 지위·생활의 테두리· 의식의 깊이에 한계를 가져야 한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미대륙에 이주하던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이른바 「메이·플라워」계약에 따라 공동사회를 이루고 어렵게나마 그 풍토에 뿌리를 내리고 동화할 수 있었다.
1년만에 그들은 칠면조를 잡아 놓고 최초의 수확에 감사하는 눈물겨운 축제를 지냈었다. 그 감사제는 오늘까지도 「퓨리턴」 정신을 북돋워 주는 축제로 내려오고 있다.
이젠 그런 일들이 하나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이 민족이 그런 것을 넘보기엔 늦었다. 그 사회도 너무 틀이 잡힌 것이다.
이민길을. 감상여행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인생의 지침을 바꾸는 각고의 결단과 용기와 의지가 없이는 쉽사리 결행할 일이 아니다.
하루 3시간 취침의 노고를 바칠 각오라면, 모국에선들 값있고 보람스러운 일이 없겠는가.
기회는 만드는 것이지, 오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한가하게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역이민도 결단과 신중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선 역시 마찬가지다. 공연히 인생을 허공에서 방황하며 투기에만 집착해 보내기엔 너무 짧고, 너무 엄숙하다.
학자들까지를 포함하여 역이민의 물결이 김포공항을 제법 번거롭게 하고 있다는 소식은 분명 하나의 「엘레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