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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이 띄운 무심의 철무지개 올 여름 베르사유궁전서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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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관계항-대화X’. [사진 이우환 스튜디오]
이우환 작가

프랑스 베르사유궁은 2008년부터 해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를 초대해 대규모 전시를 연다.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 저명 작가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올해의 전시 작가는 이우환(78)이다. 알프레드 파크망 전 퐁피두센터 국립현대 미술관장이 기획했다. 17일부터 11월 2일까지 베르사유궁과 정원 곳곳에서 이우환의 조각을 볼 수 있다. 전시 개막에 앞서 심은록 재불 미술평론가 가 이우환과 함께 베르사유궁을 걸으며 전시의 의미를 짚어봤다. 심씨는 지난달 이우환과의 대담집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을 출간했다.

9일 오후 베르사유궁 앞에는 거대한 철무지개가 반짝였다. 이우환의 신작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다. 베르사유궁 정원을 설계한 앙드레 르 노트르(1613~1700)의 인공 대운하가 그와 마주보고 있었다. 아치와 운하로 6월의 햇살이 쏟아졌다. 400만 명이 찾는 베르사유궁 현대미술전의 시작이다. 일반 공개를 앞두고 마지막 점검차 이곳을 찾은 이우환과 베르사유를 산책했다.

프랑스 베르사유궁 정원 앞에 설치된 이우환의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스테인리스 스틸판을 휘어 만든 이 ‘무지개’가 베르사유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무지개 옆에는 자연석이 놓였다. 17일부터 11월 2일까지 베르사유궁 정원과 궁 내에서 이우환의 신작 조각 10점을 볼 수 있다. [사진 이우환 스튜디오]

 관람객들은 철무지개와 인공운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아치 주변을 바삐 오갔다. 아치와 운하의 조화에 감탄하는 이, 아치의 그늘 밑에서 볕을 피하는 이, 아치 옆에 무심히 놓인 돌이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툭툭 치는 이 등 반응이 다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우환이 말했다. “예술은 다양한 해석을 갖고 각자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나는 베토벤을 좋아하는데, 그의 음악은 우주적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합창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의 공식국가이자, 인종차별국인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의 국가 멜로디로도 사용됐다. 한 곡이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거다. 예술은 이렇게 양면성 혹은 다면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록 오해의 여지가 있더라도 더 멀리, 더 깊이,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기를 가진 작품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우환은 방문자들의 동선을 고려해 정원을 거닐며 사유할 수 있도록 궁 내부(1점)와 정원에 총 10점의 조각을 배치했다. 규모가 커서 조각이라기보다는 건축적 예술이라는 인상을 줬다.

 “베르사유 환경과 그 규모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거대한 규모의 작품이 생성됐다. 내 작품은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작품이 일종의 암시나 제시가 되어 주변 공기를 움직여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게 중요한 거다.”

 그래서 그의 조각품의 제목은 항상 ‘관계항’으로 시작한다. 산책은 작은 숲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이탈리아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거장 주세페 페노네(67)의 전시 때 처음으로 일반에 개방한 비밀의 숲이다. 베르사유 정원의 나무는 삼각형·네모·원형의 자를 대고 손질해서 자연스레 수학 도형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관계항-별들의 그림자(Relatum-L’ombre des <00E9>toiles)’가 있는 작은 숲은 달랐다. 베르사유답지 않게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다. 이우환이 지난 3월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웠다. 작가는 “4월에 비가 적어 걱정했는데, 역시 아직 많이 자라지 않았다”고 탄식했다. 그는 풀(자연)이 더 자라 그의 조각과 조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숲 한가운데 수 십 개의 녹슨 철판으로 만든 둥근 담장이 조금씩 사이를 두고 서 있다. 바닥엔 흰 돌들이 깔려 있다. 여러 개의 태양을 가지기라도 한 듯, 돌 그림자가 제각각의 방향으로 뻗어 있다. 그려진 그림자와 실제 그림자의 어울림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그의 양의(兩意)적 예술과 철학의 자세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 돌들의 실제 그림자는 저녁이 되면 길어져 서로 걸쳐지기도 한다. 나의 여느 작품과 달리 이번엔 신화나 전설의 분위기가 난다.”

 그는 자신을 열어놓고 외부와 대화하며 작품을 만든다.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 이 대화는 그래서 양의적 성격을 드러낸다. “나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오브제를 전시장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니고, 현장과의 관계 및 대화에서 작품을 생성한다. 이번에도 수없이 베르사유를 방문하고, 몇 바퀴를 돌고 하는 과정에서, 각 장소에 맞는 작품을 착안하게 됐다.”

 베르사유에서 ‘대화’와 ‘관계항’의 대가인 이우환을 초대한 이유는 이렇다. 사유하기를 멈춰 버린 세대에, 타자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버린 우리 사회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그의 양의적인 예술이 다시 한 번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이다.

심은록(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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