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신빙성 높인 면접조사|황성모(충남대교수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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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창간 13주년을 맞이한 중앙일보가 올해에도 「전국 생활의식 조사」를 했다.
중앙일보의 전통이 되다시피 한 이 같은 조사도 이제는 좀 발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입만 열면 우리 사회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증명하는 뜻에서 여러 가지의 통계숫자를 나열하고 있지만 그것으로서 진정「급변」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물량의 변화가 우리들의 의식이나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양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 조사가 말해주는 바에 따르면 예컨대 작년에는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미군철수」문제라고 64.8%(1인이 3개까지 선택한 %) 가 대답했는데 반해서 금년에는 32.2%밖에 되지 않고 오히려 「물가고」가 가장 큰 관심사(41.8%)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미군절수」에 대한 국민의 관심사가 반감했다고 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물론 양적으로 보면 분명한 것은 반감이 되지만 사람의 심리란 그런 것과는 다르다.
3형제를 가진 부모가 둘째아들이 금년도 입학시험을 쳐야할 입장에 있을 때 둘째아들에 대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게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감소 또는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작년의 조사에서 44.4%가 「물가고」에 관심을 표했지만 그것은「미군철수」에 대한 관심도에 미치지 못했고 반대로 금년도에는 「물가고」에 대한 관심도가 41.8%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관심의 제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대미비판이나 국민심리의 현실화라고 바로 설명되기는 어렵다. 「표준화된 조사방법」의 결과를 「기계적」으로 처리한 것이란 원래 우리들이 인식하고자 했던 대상, 즉 국민의식을 단순히 양화 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의식을 우리 사회나 인간에서부터 괴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제 감출 수 없는 경향이 되고있다.
사실 우리들의 느낌에서는 작년과 금년사이에 「미군철수」나 「물가고」문제에 대해서 위의 빈도치가 말해주는 정도로 변했다고 할 수 없다. 「의식」이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수치로서는 그러한 「급변」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왜 그럴까? 실은 사회조사란 것이 그의 규격성과 기계성 때문에 인간 의식의 내부에까지 침투해서 조명하지 못 하면서도 그 결과를 가지고「의식조사」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의견이나 느낌- 혹은 여론이라 해도 좋다-은 극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인데 그것을 그냥「의식」이라고 부르는데 의식의 진상을 가리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필자가 앞서 중앙일보의 의식조사도 발전」되어야 하겠다고 말한 뜻을 두 가지 점에서 설명해두고자 한다.
첫째, 근래 거의 해마다 계속되어 온 중앙일보의 「사회의식 조사」 전부를 그 동안 13년간의 사회변화와 관련해서 분석 평가함으로써 「사회의식 조사」의 시점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를 재평가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의식조사」 의 방법론에 질적 발전을 가져올 계기도 되겠지만 진정 「저널리즘」과「아카데미즘」 의 접근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둘째, 「의식조사」가 사회와인간에서부터 괴리되어 외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는 근본문제가 있다. 그것은 결코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고서 조사결과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용되기만 하고 끝난다면 조사자와 피조사자와의 괴리가 커지기만 할 것이 명백하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피조사자들의 반감이나 반발을 때때로 느낄 정도가 되어있다. 사회조사 속에 인간부재가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증후는 우리들과 같은 사회학도들에게는 하나의 고민거리가 되고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이러한 고민은 많이 보고되고있다.
그러나 사회조사의 규격성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람의 심리 속에서 축적된 것이 어느 시기에 가서 「사건」으로 폭발하는 일을 포착할 수 없다는데 있다. 미국의 각종 조사가 「트루먼」대통령의 당선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사회조사관계의 책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지만, 근래의 일로서 일본의 「오끼나와」도민들이 복귀 후 혁신지사를 선출할 것이라도 사회조사가 예견하지 못했던 것도 그렇다. 그것은 「말과 접촉, 그리고 말에 의해서 조직되어 가는 사건들」을 사람들 속에서 알게되는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사회조사가 얼마만큼 참여적 관찰이냐가 중요한 것인데, 중앙일보의 이번 「생활의식조사」가 조사대상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면접조사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결과의 신빙성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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