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도시, 그 곳으로 이끄는 모호한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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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영화 ‘경주’에서 전통찻집 주인 윤희를 연기한 신민아. 손님에게 차를 따르는 장면을 위해 다도(茶道)를 배웠다고 한다. [사진 인벤트 디]

학창시절 수학여행 또는 고즈넉한 여행지로 인식돼온 경주. 영화 ‘경주’(6월 12일 개봉, 장률 감독)는 추억의 도시 경주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경주에서 능을 보지 않고 사는 건 힘들어요”란 영화속 대사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수많은 능과 사람들의 일상이 교차하는, 기묘한 곳이라는 게 장률 감독의 해석이다. 영화는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과 경주의 찻집 주인 윤희(신민아)의 가슴 설레는 만남 속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현실과 꿈을 넘나들며, 느린 호흡으로 담아낸다. 밝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한 배우 신민아(30)는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예술영화를 택한 데 대해 “30대 첫 영화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영화라서 낯설고 어렵진 않았나.

 “‘두만강’ ‘풍경’ 등 장률 감독의 전작을 인상깊게 봤다.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훌륭한 감독이다. 시나리오는 어려웠지만, 촬영 전부터 감독과 대화하며 캐릭터를 조금씩 만들어갔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다.”

 - 모호한 캐릭터인데 연기하기 어렵지 않았나.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떨쳐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여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늘 심각하지만은 않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윤희의 모호한 캐릭터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은 공존한다’는 영화의 주제와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표현하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찻집에서 처음 만난 최 교수에게 호감을 갖고 계모임에 데려가는 게 너무 급작스럽지 않나 걱정했다. 7년 전 찻집에서 봤던 춘화(春畵)를 찾는 그를 변태 취급까지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윤희가 어린애 같으면서도 어른스러운 여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여자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게 윤희의 매력인 것 같다. 천천히 걷고, 차분하지만 할 말은 하는 여자다.”

 - 술에 취해 커다란 능에 올라 ‘안에 들어 가도 되요?’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윤희의 솔직하고 본능적인 면이 드러난 장면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삶 속에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영화 초반에 거대한 능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영화의 공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 찍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남성 듀오 노고지리의 ‘찻잔’(1979)이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중국동포 출신이라 한국 노래를 잘 모르는 감독에게 내가 추천한 노래다.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은 가사가 영화의 느낌, 윤희 캐릭터와 잘 맞는 것 같았다.”

 - 촬영하면서 힐링하는 느낌이 들진 않았나.

 “지난해 여름 경주에서 보름간 촬영했는데, 경주의 여름 밤 공기가 정말 좋았다. 감독, 해일 선배와 셋이서 밤 산책하다 길을 잃기도 했다(웃음). 감독·스태프와 찻잔을 들고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힐링하는 느낌을 받았다.”

 - 앞으로도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병행할 생각인가.

 “이제 예술 영화에 한 손가락 담근 정도가 됐다(웃음). 장률 감독이 또 찍자며 스케줄을 자꾸 물어본다. 예술영화, 상업영화 구분없이 더 자주 영화를 찍고 싶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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