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에 빛 전하는 의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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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이곳 타슈켄트의 높이는 해발 4백70m에 이릅니다. 게다가 면화 재배가 주산업인 이곳에선 어릴 때부터 밭에 나가 농사를 돕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습니다. 30.40대부터 백내장이 오기 시작해 60대에 이미 실명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하지요."

올해로 세 번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인천 한길안과병원 최기용(50)원장. 그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는 자외선과 백내장의 관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동행한 김포 한길안과 강신욱 원장과 함께 그는 이곳에서 '신(神)의 손'으로 불리기도 한다. 불과 30여분의 시술로 환자들에게 세상의 빛을 다시 돌려주기 때문.

"한국에선 백내장을 수술하는데 15분이면 족하지요. 하지만 이곳 환자들은 혼탁해진 수정체가 단단하게 굳어 있어 이를 제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의술도, 돈도 없으니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간호사와 검안사 등 11명의 의료진을 이끌고 지난달 28일 타슈켄트에 짐을 푼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진료와 수술을 하는 강행군을 했다. 최소 3개월 이상 의료봉사팀을 기다렸던 사람들이라 마감시간을 정해 환자를 제한할 수 없는 탓이다.

그는 고려인 노인들을 볼 때 더욱 가슴 아프다. 이곳에는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25만 여명 살고 있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젊은층이 러시아로 많이 떠나 노인들의 분포가 높은 것도 특징.

진료 첫날 앞이 안보여 빗길에 넘어졌다는 김안나(67)할머니는 다음날 안대를 뗄수 있게 되자 崔원장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5년간 아이 뵈었소. 지금은 원장님 낯(얼굴)이 잘 뵈오. 고마우다, 고마우다." 바로 이 순간이 그를 이곳으로 달려오게 하는 이유다.

崔원장이 속한 한길의료재단(이사장 정규형)은 항구적인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주재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치과의사와 함께 오는 5월 우즈벡 자선병원을 연다.

"해외 의료봉사는 지방의 작은 병원이 하기에는 매우 벅찹니다. 이 같은 활동이 민간외교 면에서도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익기관이나 단체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타슈켄트=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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