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압바스, 교황 앞에서 화합의 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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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프란치스코 교황(사진 오른쪽)이 8일 바티칸 정원에서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사진 왼쪽)과 압바스 팔레스타인 정부 수반(사진 가운데)이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바티칸 AP=뉴시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1년여 넘게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선 반갑게 포옹했다. 2300㎞ 떨어진 지금의 예루살렘에서라면 상상키 어려운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덕분이다.

 두 사람은 이날 저녁 바티칸에서 열린 중동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에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중동 방문 때 제안한 걸 두 지도자가 흔쾌히 수용하면서 성사된 자리다. 여기엔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도 함께했다.

 각각 교황 숙소에 도착한 이들은 곧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좁은 차 안에선 대화와 웃음이 이어졌다. 그러곤 도착한 곳이 바로 성 베드로 성당 뒤편에 위치한 바티칸 정원이었다. 담장 너머로 베드로 성당의 돔이 보일 뿐 별다른 종교적 상징물은 없는 곳이다. 여기에서 교황과 이들 지도자가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유대교·가톨릭·이슬람교 신자들도 동참했다.

 교황이 먼저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평화적 대화와 공존을 위한 모든 작업에 인내와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들과 바르톨로메오스 1세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아래 사진 오른쪽)는 중동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 뒤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바티칸 AP=뉴시스]

 페레스 대통령은 “나는 전쟁도 경험했고 평화도 경험했다”며 “다음 세대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건 우리의 의무이자 부모의 성스러운 임무”라고 말했다. 압바스 수반도 “중동의 민족들은 물론 세계인들이 평화와 안정 그리고 공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조국과 우리 지역에 정당하고 총체적인 평화를 갖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페레스 대통령도, 압바스 수반도 서로를 자극할 법한 직접적인 얘기는 삼갔다. 국경 얘기를 피한 게 대표적이다. 에둘러선 말했다. 예루살렘을 두고 압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 성지”, 페레스 대통령이 “유대민족의 박동하는 심장”이라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세 사람은 그런후 함께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현지 분위기는 영 다르다. 미국이 주도했던 이·팔 평화협상은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며 팔레스타인의 양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 통합정부가 지난주 출범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은 물론 서방 국가 대부분엔 테러집단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에 통합정부를 인정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보복 차원에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정착촌 1800채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으르고 있다.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페레스 대통령이 7월 물러난다곤 하나 “이번 회동이 상징적 의미가 클 수 있다”는 평가(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다. 적어도 대화의 필요성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교황 자신은 “협상을 중재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함께 기도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만남이 화합하고 분열을 극복하는 새 여정의 출발이길 기대한다”는 말도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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