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프라하의 봄』10주년-「나토」엔 날벼락…소군 침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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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의 「체코」침공 10주년(8월20일)을 맞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사령부는 정보판단 착오와 소련의 평화공세를 쉽게 믿은 실수에 대해 자가비판을 하고 있다고 「파리」의 「피가로」지가 최근 보도했다.
10년전 「나토」의 대공산권 정보판단 착오는 28년 전 한국전 당시 「워싱턴」의 북괴군 침공 판단착오를 그대로 답습한 서방 군사전략의 오점으로 지적된다.
「체코」사태에 대한 첫 번째 과오는 『「나토」의 각국 대사들이 소련은 「체코」를 감히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짓고 이를 본국정부에 전문으로 보낸 사실』이다.
「나토」주재 각국 대표들이 소련의 「체코」침공이 불가능하다고 본 이유는 『「나토」는 중부「유럽」의 동서상호감군협상을 68년5월에 제의했으며 소련은 「유럽」안보협력회의 소집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CIA와 서독의 정보기관 BND는 이미 6개월전인 68년2월 소련의 침공가능성을 경고했었다.
8월20일 밤부터 21일까지의 침공은 신문기자들의 보도가 「유럽」주둔 연합군 최고사령부 보다 더 빨랐다. 서독주둔 「나토」작전사령부는 신문을 통해 침공사실을 알았다.
8월20일 밤11시 「바르샤바」군이 「체코」군사기지에 집결하고 있을때 「나토」수뇌부는 물론 당시 「만리오·브로시오」사무총장까지도 「바캉스」중으로 완전 공백상태에 있었다.
「나토」수뇌부가 「체코」의 구출불능을 안 것조차도 48시간이 걸렸으며 긴급히 「브뤼셀」의 「나토」사령부에 돌아와 최초의 상황협의와 분석을 하는데도 18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는 일요일 남침을 당한 한국의 경우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그나마 「나토」수뇌부가 확고한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두 번째 과오다.
「나토」의 「레이다」기지 장교들은 8월20일 밤 「레닌그라드」공항과 「프라하」를 잇는 항공수송 강화를 탐지했으나 이것이 「나토」를 직접 위협하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사령부에 즉각 보고하지 않았다. 「체코」사태가 최악으로 빠지고 있던 8월21∼22일 양일간에 서독주둔 연합군 부대가 출동여부의 지시를 요구하자, 『「나토」「유럽」최고사령부는 이와는 반대로 「체코」와의 국경 상에 모든 정규적 비행조차도 사고를 피하기 위해 금지시켰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 신문은 『최초의 경계지시가 하달된 것은 침공 60시간후인 8월23일이었다』고 폭로했는데 이같은 「나토」정보판단 실수와 수뇌부의 공백상태 등 과오는 6·25사변의 쓰라린 체험과 함께 경계해야할 교훈으로 삼을만하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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