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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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꾸물거리기에 달력을 봤더니 오늘이 칠석이라. 관상대의 예보도 오늘은 비.
…작년 오늘 만나보고 다시 만날 오늘밤을 손꼽아 기다릴 제 이내 간장 썩은 물은 대장강 이루었네…
은하수를 사이에 둔 두별의 거리는 가까워 보여도 15·5광년이다. 그러니까『지난 한햇동안 자기는 별고 없으셨나요』하고 직녀가 무선전화로 하는 말이 견우 바지씨의 귀에 닿기까지 꼭 15년반이 걸린다.
『당신도 잘 있었어』하고 되묻는 견우씨의 말이 전해지는 것도 15년반이 걸린다.
결국 말한마디 나누는데도 31년이 걸리는 셈이다. 도저히 서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특히나 우리 나라와 같은 딱한 전화사정 속에서는.
…까치 까치 까막까치 어서 빨리 날아와서 은하수에 다리 놓아 견우직녀 상봉시켜 1년 동안 맛본 설움 만단설화 하게 하소 애야 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 좋네…
전설에 의하면 두별은 까치들이 은하수에 놓은 오작교란 다리 위에서 만난다.
그러나 만난다는 것은 말뿐 손목하나 만져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옛사랑이란 견우직녀의 사이나 같았다.
요새는 모든 게 감각적이다. 때로는 ??물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눈으로 볼 때에는 견우직녀의 사랑이란 그저 딱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칠석이라 해도 아무 느낌 없이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잃은 풍토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인 얘기 같지만『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전히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 현대판과도 같은「시걸」의『러브·스토리』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었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의 풍토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랑을 앗아가며 있다. 사랑의 숨결을 죽여가며 있기도 하다.
메마른 마음에서는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 그리고 물질의 풍족은 오히려 메마른 마음을 더 돋보여줄 뿐이다. 사랑의 갈증도 더 심해갈 뿐이다.
오늘 우리는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사랑의 빈곤을 느낀다. 그저 주체할 길 없이 부풀어 오는 추악한 욕망만을 느낄 뿐이다.
까막까치마저 우리를 버린 세상이다. 그들은 결코 오작교를 놓으려고 떠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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