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박사, 암살 위협에도 독립신문 창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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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재필(1864~1951)박사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國權)을 빼앗겼을 당시 민중들에게 주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독립운동의 정신적인 힘이 되었던 지도자입니다."

재미학자 이정식(李庭植.71)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가 7일 '구한말의 개혁.독립투사 서재필' (서울대출판부)을 펴냈다. 7일은 서재필 박사가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것을 기리는 제 47회 신문의 날이었다. 李교수는 이번 연구의 목적을 독립운동의 뿌리를 찾는 데 두었다고 했다.

"갑신정변(1894년) 이전부터 서박사와 친분을 가졌던 인물들이 결국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의 중추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서박사의 인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20여년간 수집해온 서박사의 망명 시절 활약상과 일화 등도 덧붙였습니다."

李교수는 84년에도 '徐載弼: 미국 망명시절'을 내는 등 서박사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74년에는 UC버클리대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펴내 미국 정치학회가 선정한 '최고 저작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의 해방전후사에 정통한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4백2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을 내면서도 쉽게 답을 구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독립신문이 발간된 때는 일제의 위협이 더해가던 시절이었는데 왜 제호를 '독립신문'으로 정했냐는 것이다.

"'서울''대한' 이라는 명칭보다 '독립'이라는 용어를 신문에 붙인 것은 그의 애국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당시 서박사는 독립신문으로 인해 암살위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서박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죠."

李교수는 현재 경희대 NGO대학원의 초청으로 해방 전후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도 정통한 그는 최근 이와 관련해 심도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체제의 불안으로 인해 생겨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을 계속 궁지에 몰아 체제 불안을 가속화하는 데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냉철한 이성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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