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동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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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일본이 미국에 대해한국·대만 등 제3국의 대미 컬러 TV수출규제를 위한 모종조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다.
이러한 일본의 요청은 일본 가전업계의 압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대미무역흑자의 누증과 미국시장에의 과다진출에 따른 반발 때문에 대미 컬러 TV수출을 작년 하반기부터 자율규제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국제경쟁력이 강한 일본 컬러TV의 수출이 부진한 대신 한국·대만 등 개발도상국제품이 미국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므로 이에 대한 조처를 강구해 주도록 일본 가전업계가 계속 요구해왔다.
물론 일본 가전업계로선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미일정부간 회담에서 제기되었다는데 대해 우리는 큰 총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가장 근본적으로 경제대국 일본이 한국·대만과 똑같은 기준에서 의식·행동한다는데 깊은 부만을 느끼는 바이다.
일본은 아시아 유일의 선진공업국으로서 역내의 공동번영과 안정을 위한 책임과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인 한국·대만과 똑같은 처우를 받아야 되겠다는 논리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일본의 이러한 논리가 오늘날 일본을 경제동물로 만들고, 특히 아시아에서의 배일 무드를 부채질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겠다. 경제대국이 되면 될수록 그에 따른 의식수준과 책무가 뒤따라야 한다.
이번 문제가 된 컬러TV만 해도 최근 급증했다고 하는 한국의 대미수출량이 1∼4월 사이에 9만대인데 비해 일본은 무려 53만대나 된다.
경제규모와 발전단계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대만 등과 똑같은 대우를 받겠다는 것은 수직적 분업체제를 영원히 계속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동안 미일의 경제분쟁 때마다 한국·대만 등은 늘 유탄의 피해를 보아왔다.
71년의 섬유파동도 그 발단은 일본의 대미수출이 급증한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현실적으로 보아 일본은 수출보다 수입을 오히려 늘려야 하는 입장이다.
본 경제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정상흑자감소와 수입개방확대가 강력히 요구되어 합의를 얻었다.
금년 상반기 일본의 무역수지는 무려 ∞억3천6백만 달러의 흑자를 보여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또 일본의 대미·대한 무역흑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의 시정이심각한 정치적·경제적 문제가 되고있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77년에 17역8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런 여건에서 일본 가전업계의 남을 물고 늘어지려는 물귀신적· 장사꾼 논리가 정부의 논리로 채택되어 미 정부에 정식 요청된 것은 경제대국 일본이 지금 가야할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본의 행동과는 관련 없이 우리나라로서는 76년부터 계속되는 대미 무역흑자와 일부품목의 집중호우식 수출이 미국 안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 대비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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