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여당 소통 잘 돼야 부총리에 힘 실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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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밝힌 책임내각 국정운영 구상은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권 구상을 떠올리게 한다. 2004년 8월 집권 2년차였던 노 전 대통령은 ▶일상적 국정 총괄은 이해찬 총리 ▶통일·외교·안보 분야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회·문화 분야는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이끌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내각에 참여한 여당(당시 열린우리당) 실력자들에게 힘을 실어줘 당정 간 유기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이해찬 총리는 명실상부한 ‘실세 총리’로서 다방면에 걸쳐 막강한 입김을 발휘했으며, 정동영·김근태 장관도 예전 장관들에 비해 훨씬 발언권과 영향력이 커졌다. 분권형 내각은 2006년 이해찬 총리가 교체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관건은 만기친람(萬機親覽·매사를 자신이 직접 챙긴다는 뜻) 스타일인 박 대통령이 얼마만큼 총리와 경제·사회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냐는 점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분권 구상 발표 이후 내각 지휘는 이해찬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장기적 국가전략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에 오히려 2006년 초부턴 열린우리당에서 “청와대가 챙겨야 할 부분을 너무 많이 방기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을 정도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일은 꼼꼼히 챙기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내각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권 핵심 인사는 “그동안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대통령 1인 통치’에 대한 지적이 많았던 점을 박 대통령 본인이 깊이 인식한 것 같다”며 “대통령이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게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달라고 한 만큼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책임총리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을 크게 바꾸겠다고 결심한 만큼 향후 개각의 폭도 커질 가능성이 크고, 인선 범위의 폭도 확대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련 부처를 통할하려면 경제·사회부총리에 관료 출신이 아니라 정무형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총리가 정치권과 대화가 원만해야 책임형 부총리의 위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분권 운영 구상을 환영했다. 유기준 의원은 “어차피 대통령이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다. 책임총리·책임장관으로 가는 게 효율적”이라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분야도 부총리를 둬 무게를 더하는 건 질적성장을 중시하는 시대정신에도 맞다”고 말했다.

 반면 우려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에게 과감히 권한을 이양한 것은 두 사람이 동지적 신뢰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분권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분권 시스템이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실패작이란 평가를 받은 건 당·청 관계가 원만히 돌아가지 않아서였다”며 “박 대통령이 여당과의 소통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단순히 관료의 직급만 부총리로 올려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순순히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새정치연합의 김영록 원내 수석부대표는 “사회부총리 신설 등은 검증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의 한 비주류 의원도 “박 대통령이 사회부총리 구상을 밝힐 때까지 당과는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 정부조직 개편은 사전에 당과 상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정하·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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