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고 넘어 가야할 몇 가지…청와대 도청 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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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정보기관에 의한 청와대 도청 설은 76년10월 「워싱턴·포스트」와「뉴욕·타임스」가 처음으로 보도했었다.
한국정부는 이 도청 설의 사실여부의 해명을 미국정부에 강경히 요구했고 미국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함으로써 미지가 오보한 것으로 덮어져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한대사(67∼71년)를 지낸 전직외교관이 TV회견을 통해①도청장치가 돼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②자신이 도청장치를 하지 말도록 특별명령을 했다고 말했다.
국무성대변인과 주한대사관측은 이번에도 『사실이 아니다』고 되풀이했으나 쉽사리 「오보」나「오발」로 덮어둘 수는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선 자기네들끼리 도청한 사실이 밝혀져 대통령이 물러나기까지 했다. 하물며 남의 나라 원수의 집무실에까지 도청을 했다면 일단 「설」로 나온 이상 그것 자체로서도 중대한 사실이다.
더우기 전직대사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부인발언」만으로는 끝낼 수가 없게 됐다.
아무리 「한미우호」를 강조하더라도 최소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미국의 어느 기관이 누구 책임 하에 어떤 장비로 얼마동안 도청했는가(또는 하려했는가)한미공동으로 규명돼야한다.
둘째, 이 규명은 문서로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말과 기기의 실물과 설치의 경로까지 밝혀져야 한다.
셋째, 도청한 내용이 어느 선까지 보고되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미국 측이 밝혀야한다. 넷째, 설혹 도청을 안 했더라도 그 장치를 한 것만은 명백하다 (포터 씨가 다시 설치하지 말도록 명령했다니까) .따라서 이에 대해 미국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한국에 대해 사과해야할 것이다.
다섯째, 이 사과에는 관계자의 인책과 앞으로 다시 그러한 도청기도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어야한다.
○…위와 같은 몇 가지 조치가 이루어지자면 이는 정부의 강경한 자세도 자세려니와 미국 측이 응분의 성의를 보여야한다.
당초 도청설이 나올 때부터 미국 측의 공기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도청」이라는 사실 이 자체의 비도덕성과 비 외교적 사실보다는 도청에서 밝혀졌다는 박동선사건의 일단만이「클로스업」되었던 것이다. 그릇된 대국주의였다.
도청설이 발설된 배경에 대해 미국내부의 정치역학이나 기관간의 권력관계가 깔려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한편으로는 미국언론의 끈질긴 추구력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의 문제인 것이며 제3국에 대한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청와대도청은 「설」만으로도 주권과 국민감정에 중대한 손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형식적인「항의」「부인」「유감의 뜻」만으로는 끝날 수가 없는 문제다.
박동선 사건이 몇 달 안에 매듭지어지면 한미관계는 정상화되리라고 전망되었으나 한미관계는 「포터」발언으로 새로운 파도를 눈앞에 맞게된 셈이다. 【양태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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