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전은 국민 권익의 핵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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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
전 국민권익위 비상임위원

세월호 침몰 3개월 전에 전직 청해진해운 직원이라고 밝힌 민원인이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청해진해운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민원을 올렸다. 선박 정원 초과 운영, 오하마나호의 잇따른 사고 무마 의혹, 비정규직 직원 채용 문제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이 민원은 민원인이 지정한 기관인 고용부로만 넘겨져 임금 문제에만 답변이 이뤄졌다고 한다.

 민원인이 제기한 불합리와 불법을 시정하고 새로운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기에는 3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박 정원 초과 운영, 잇따른 사고 무마 의혹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즉시’ ‘안전’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고 조치하기에는 3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 주어진 시간이다. 이 민원의 핵심은 위험한 해상사고와 관련된 안전에 관한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아니 알았어도 일부러 무시해 버렸다면, 그리하여 민원인이 민원 제기 기관을 지정했다는 이유로 마치 공놀이하듯이 민원을 고용부로 토스해버린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권익위의 주요 기능은 옴부즈맨(ombudsman)에서 기원한다. 옴부즈맨은 스웨덴어로 대리인을 의미하며 행정권력이나 행정관료의 직권남용, 불법, 부당행위로부터 국민의 권리나 이익을 보호한다. 여러 나라에서 채택되고 있는 이 옴부즈맨은 비사법적인 수단에 의해 활동하므로 법원처럼 행정처분 취소의 권한도 없고 또한 행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권도 없다. 대부분 사실조사권, 언론 공표, 국회에 대한 활동보고권만이 있다. 이러한 권한만으로 옴부즈맨이 어떻게 국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면 국회의 국정조사권을 떠올리면 된다.

 국회가 국정조사권의 일부를 옴부즈맨에게 위임하지 않는 경우 행정형 옴부즈맨이 도입되는데 한국의 국민권익위가 그 예다. 해당 법률 제12조는 국민권익위의 업무가 “고충민원의 조사와 처리 및 이와 관련된 시정권고 또는 의견표명, 공공기관의 부패방지를 위한 시책 및 제도개선 사항의 수립·권고와 이를 위한 공공기관에 대한 실태조사” 등임을 못박고 있다. 따라서 국민권익위는 민원 분류처가 아니다. 청해진해운 직원이었던 민원인에 대한 업무처리 방식은 법률에 규정된 국민권익위의 기능과 업무에서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더구나 국민권익위는 2008년 기존의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통합했기 때문에 오히려 민원으로부터 부패요소를 감지하고 처리하는 데 있어 더 능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민간 부문과 비교해 보면 양쪽의 거리는 더욱 아득해진다. 민간의 경우 고객 불만사항이나 제언에 모든 답이 있고 중요하므로 그 정보들을 모아 경영에 반영한다. 그리하여 심지어 고객센터로 접수되는 불만이나 건의사항으로도 만족하지 아니하고 일부러 비용을 들여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면서까지 고객의 민원사항이나 불만을 알아낸다. 이러한 정보로부터 어떻게 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인지,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업무에 반영한다. 나아가 고객의 불만사항 외에도 빅데이터까지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신용카드 사용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휴대전화 사용 분석을 통해 상권까지도 분석한다. 그러한 데이터 수집이 불법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 카드정보 유출사태가 아니던가.

 국민권익위는 제 발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불만사항, 즉 전 청해진해운 직원의 안전과 관련한 민원에 대해 분석은커녕 이첩해버렸다. 선박 안전과 관련된 것도 포함돼 있었는데도 말이다. 국민이 스스로 제공하는 정보도 눈 뜨고 못 알아차린, 초보적인 데이터마저 놓친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더불어 제도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더구나 안전은 국민 권익의 핵심이 아닌가?

 청해진해운과 관련한 이 민원이 한 해 150만 건 민원 중의 하나였다는 항변도, 노련하고 경험 많은 전문가라면 이 민원의 의미를 즉각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변명이 되지 않는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국민권익의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권익에 민감한 촉수를 가진 경험 많은 전문가가 최일선에서 민원을 다루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민원 분석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반영되도록 하는 개선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력이 행정부나 사법부 소속이었던 공무원으로 인력이 충원되고 있는 국민권익위의 작금의 현실은 여러 우려를 낳게 한다. 최소한 민원을 접하는 최일선과 그 판단의 자리에는 국민권익 의식이 확고하고 민원을 총체적으로 꿰뚫을 수 있는 전문적인 역량을 가진 인력이 포진하고 있어야만 한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아는 만큼만, 정확히 딱 그 정도만 판단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전 국민권익위 비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