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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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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행 과정과 그 배후에 대한 조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많은 참담함을 느낍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우리나라의 민낯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단원고 선생님들을 비롯한 몇 분들의 의로운 모습은 감동스러웠지만 승객들을 팽개치고 먼저 살겠다고 도망친 선원, 안전보다 돈벌이를 우선하여 각종 규정을 위반한 해운회사, 그리고 그러한 불법을 가능하게 한 관피아의 행태 등은 우리 사회의 적체된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하나라는 교수로서, 특히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국립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저 자신은 과연 그동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기여를 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사고를 일으킨 세월호 선원들, 유병언 일가를 비롯한 청해진해운 관계자들, 유착관계로 이권을 챙긴 전·현직 공무원들, 그리고 사고 발생 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 관리들 ― 물론 이들 모두 철저히 책임을 밝혀내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처벌하고 우리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되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이 사고는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이 겹쳐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난 한 단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렇게 이끌어 온 정치지도자와 고위공무원의 책임이 물론 크겠지요. 그러나 일상생활의 사소한 불편을 이유로 그동안 안전에 소홀해왔거나 불법·편법을 관행적으로 용인해 온 사람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국가 개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제 네 탓, 내 탓을 따지는 단계를 넘어서 국민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행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찾아질 것입니다.

 저는 과학자로서 그동안 재해나 재난에 대비한 안전대책에 무관심했음을 반성합니다. 일본은 첨단과학기술 연구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진흥기구(JST·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에 사회기술연구개발센터(RISTEX)라는 기구를 두어 재해·재난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의 과학기술적 해결책을 연구합니다. 쓰나미(지진해일)가 발생했을 때 최적의 대피 방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찾아내거나 무거운 트레일러가 전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한 교통안전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안전에 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재난·재해에 대비한 과학기술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경제성장에 중점을 둔 까닭이지요. 저 자신이 이런 연구를 못하더라도 다른 분들이 연구하시는 것은 도와드려야 할 텐데, 제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배정에 관여할 때도 이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후회스럽습니다.

 학교의 실험실 안전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실험실 안전에 대한 의식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집니다. 미국의 한 국립연구소에서는 실험실 안전사고가 나자 그 실험실을 몇 개월 동안 아주 폐쇄하고 연구소 전체에 대해 안전점검을 시행한 일이 있습니다. 선진국은 실험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이 정도로 철저합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 교수나 학생의 의식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비상구나 비상계단이 실험장비 때문에 막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만성적인 공간 부족 등 우리 대학 실험실의 여건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것이 근본 원인이지만 이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공간 부족을 이유로 비상구를 막는 것은 마치 급하고 형편이 어렵다고 소방도로를 막고 주차하거나 장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처럼 단기적 편익을 위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외신은 “정작 중요한 것은 안전시스템 정비인데 한국인들은 참사의 원인을 캐려다 너무 그물을 넓게 던졌다”고 평했다지만 저는 그물은 넓게 던지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사회적 시스템과 의식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정부는 안전시스템 개혁 같은 구체적인 조직 및 하드웨어 정비를 철저히 하고, 대신 정부가 하기 어려운 부분은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모두가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겠습니다”라며 나서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