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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한 분만 특별하게 모십니다' 1인숍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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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 인근 1인 미용실 ‘쿠니’. 이곳은 출입문이 이중인데, 한쪽 문(오른쪽)엔 주인의 얼굴 그림과 그가 손님에게 건네는 글귀가 쓰여있다. 문 안쪽의 헤어관리용 의자는 너무 작게 보여, 따로 찍어 합성했다. 사진=김경록 기자

‘초대형 규모의 넓고 쾌적한 공간’. 뭐든지 큰 게 매력이던 시절, 소비자 눈을 사로잡기 위해 흔히 쓰이던 광고문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광고문구가 바뀌었다. ‘도심 속 당신만의 아늑한 공간’이라거나 ‘우리들만 아는 프라이빗 공간’식으로 말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프라이빗’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호텔·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카페와 리조트·병원, 심지어 각종 강좌까지 줄줄이 나온다. 모두 프라이빗을 내세워 손님을 끄는 광고들이다. 많은 이들이 이젠 탁 트인 초대형 공간보다 내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는 은밀한 공간을 더 선호하기에 나온 광고들이다. 주인장이 동일한 시간엔 딱 한 손님만 받는 1인 미용실이나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 점점 느는 것만 봐도 이런 현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운동하는 공간 역시 최근엔 대형 피트니스 센터보다 작은 공간에서 1대1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피트니스 스튜디오가 더 인기다. 대체 이유가 뭘까.

반포에 있는 피트니스 스튜디오인 옵티멀 피트니스에서 한 회원이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고 있다. 이곳에선 대형 피트니스 센터의 북적임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조용히 운동할 수 있다.

전업주부 김명주(37·부천시)씨는 미용실 갈 때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인 두 아이, 그리고 남편과 함께 간다. 전에는 미용실 직원은 물론 다른 손님 눈치가 보여 애들 데려가기가 꺼려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당당하게 온 가족을 끌고 간다. 이게 다 1인 미용실을 이용하는 덕분이다.

“누구나 다 아는 대형 헤어숍을 다녔어요. 아이들이 조금만 시끄럽게 굴면 여러 사람 눈치가 보여서 머리 하는 내내 불편했는데,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 마음이 편해요. 흉 보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냥 집에서 머리 하는 기분이에요. 배고프면 음식도 시켜먹어요. 큰 아들은 원래 미용실 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여긴 편하대요. 전에는 쭈뼛쭈뼛하더니 이젠 자기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구체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부천으로 이사한 후에도 한두달에 한번 강남에 오는 이유예요.”

김씨가 다니는 1인 미용실은 신사동에 있는 ‘앨렌제이’로, 헤어디자이너 한 명이 정해진 시간에 손님 한 명만 받는다. 100% 예약제다. 손님이 사전에 원하는 서비스를 얘기하면 커트냐 펌이냐에 따라 1~3시간 동안은 디자이너가 전적으로 그 손님 머리만 관리한다. 다른 손님이 없으니 고객은 디자이너로부터 충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김씨는 “대형 유명 헤어숍엔 워낙 사람이 많으니 뭔가 빨리 하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쫓기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며 “1인 미용실에선 디자이너가 온전히 나에게만 매달려 내가 원하는 스타일 등을 파악한 후 머리를 하기 때문에 올 때마다 늘 전담 디자이너에게 관리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PT숍, 1인 미용실, 원 테이블 레스토랑 등
극소수 부유층만 누리던 1:1 서비스 대중에 확산
남 시선 없이 대접 받고 싶은 욕구 커진 탓

원 테이블 레스토랑인 이수부 매장. 예약할 때 원하는 메뉴를 말하면 셰프가 만들어 준다.

‘은밀한 서비스’ 시대의 도래

1인 미용실뿐만이 아니다. 원 테이블(one table) 레스토랑이나 트레이너와 1대1로 운동하는 피트니스 스튜디오 등 소규모 공간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1인 미용실은 최근 2~3년 사이 홍대 인근과 강남을 중심으로 수십 곳이 생겼다. 피트니스 스튜디오 역시 신사·반포 등 강남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반포동에 있는 옵티멀 피트니스 김정진 대표는 “우리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반경 200m 내에 이런 공간이 13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런 공간의 공통점은 현대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프라이버시를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과거엔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하고 럭셔리한 곳에서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게 유행의 첨단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거꾸로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을 가야 뭔가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것도 작은 공간이 유행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광고회사인 이노션월드와이드 홍보팀 이지숙 국장은 이를 “프리미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는 “특히 2535 젊은 세대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이들은 프리미엄의 가치를 단순한 고가 서비스나 상품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고, 나만 아는 공간에 둔다”고 말했다. 아무리 비싼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아도 누구나 다 알고 할 수 있는 것에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경리단길에 있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 ‘장진우식당’에서 만난 강수현(28·인천)씨는 “우리 또래는 크고 화려하고 유명하다는 데는 잘 안 간다”며 “이런 데는 식상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에 숨어있는 색다르고 독특한 곳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과거엔 좁은 공간의 매장은 뭔가 싸구려 이미지였다. ‘구멍가게’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번듯하게 매장을 낼 자본이 없고, 그래서 정겨울 수는 있으나 뭔가 상품 질(質)이나 서비스 면에선 크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비좁음은, 빈약함이 아니라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라이프트렌드 2014』를 쓴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소비자는 점점 개인화하고 있다”며 “남들과 한 공간에 있기 싫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머리 할 때든 밥 먹을 때든 운동 할 때든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기 때문에 나를 남에게 노출시키지 않는 공간을 찾는다는 말이다.

정인영 앨렌제이 사장은 “여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머리 손질 받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남 시선없이 혼자 관리받을 수 있는 게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신사동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 인뉴욕. 한번 예약을 하면 2시간동안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신사동에 있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 ‘인뉴욕’ 이송희 오너셰프는 “연인 고객도 많지만 중요한 비즈니스 대화를 하려는 대기업 임원이나 치매 걸린 어머니와 외식하고 싶은 가족 등 사적인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운동하는 사람은 이런 욕구가 더 강하다. 잘 가꾼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일부 ‘몸짱’을 제외하면 대부분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태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에 있는 피트니스 스튜디오인 ‘프라이빗 바빌론’ 이정수 총괄매니저는 “최고경영자(CEO)나 대기업 중역들은 사람 많은 데서 운동하는 걸 싫어한다”며 “부하직원도 상사와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기 싫어하듯 상사 역시 배 나와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 적은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대형매장 영업 방식 염증 난 젊은 전문가 몰려
실적 경쟁 내몰리지 않고 한 명씩 집중 가능
예약제로 번화가 피해 임대료 부담 적은 편

합리적 가격이 유행의 한 요인

사실 한 사람만을 위한 서비스란 개념이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얘기는 아니다. 백화점 VVIP고객들이 VIP룸에서 그들만의 쇼핑을 한다거나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식사하는 건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이런 서비스엔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돈, 아니면 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등장한 1인 미용실이나 원 테이블 레스토랑 등은 다르다. 대부분 그리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만큼 가격이 합리적으로 매겨져있다.

미용실마다 차이가 있지만 웬만한 1인 미용실은 한 시간 정도 예약해서 커트를 하면 2만~3만원대, 펌도 7만~10만원대에 불과하다. 비싸봐야 15만원 정도다. PT숍도 1회 서비스에 7만~9만원 선이다.

그렇다면 레스토랑은 어떨까.

이송희 셰프는 “1인당 10만원, 그러니까 두 명이 20만원만 들이면 2시간 동안 온전히 레스토랑을 전세내서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며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웬만한 파인다이닝 스테이크 1인분 값이 8만~9만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아주 고가(高價)는 아니다”고 말했다.

소규모이다보니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손님 수가 적다. 1인 미용실은 하루 평균 7~8명 수준,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은 이보다 적은 3~4팀 정도다. 그런데 값마저 비싸지 않다니,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운영자들은 “큰 욕심만 버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은영 헤어디자이너가 인테리어까지 직접 한 상수동의 1인 미용실 장싸롱. 

2011년 상수동 주택가 골목길에 1인 미용실 ‘장싸롱’을 연 장은영(32)씨는 “요즘 같이 임대료가 비싼 시기에 5000만원 미만으로 창업했다”며 “예약 손님만 받기 때문에 번화가를 피해 가게를 얻을 수 있어 임대료가 싸다”고 말했다. 이정수 총괄매니저 역시 “PT숍 대부분 번화가가 아닌 골목 안쪽, 이면도로 안 건물 지하나 위층에 구한다”며 “임대료 부담이 줄면서 독립을 꿈꾸는 젊은 트레이너들이 창업하기 쉬워졌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나 단골이 확보되면 꽤 괜찮은 수익을 내기도 한다. 한 1인 미용실 사장은 “하루 평균 30만원 매출만 올릴 수 있으면 한달에 800만~900만원을 버는 셈”이라며 “인건비가 없고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500만~600만원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공간 탄생의 비밀

단지 그걸 바라는 소비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게 된 걸까.

헤어아티스트 유다(38)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청담동 미용실 듀엣by유다. 상호의 ‘듀엣’은 손님과 헤어 디자이너 ‘단 둘’이라는 의미다

배우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웨딩 헤어 등 연예인의 광고와 화보촬영 등을 담당해온 그는 2006년 ‘듀엣by유다’라는 작은 미용실을 청담동에 열었다. 단 한 명의 고객이라도 최선을 다해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고객에 따라 머리 손질 시간이 천차만별”이라며 “고객과 소통해 원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알아낸 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걸 정확히 표현해 내고 싶었는데 대형 헤어숍은 수익을 위해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구조라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펌보다는 되도록 커트로 스타일을 내는 그의 성향은 1인 미용실에 대한 욕구를 더욱 키웠다. 커트만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나 지적인 이미지 등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구현하려면 그만큼 더 많이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1인 미용실 형태로 독립을 했다. 이 곳에선 커트든 펌이든 염색이든 다 똑같이 15만원을 받는다.

피트니스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PT(Personal Training)숍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100평 이하의 작은 공간에서 동 시간대에 10명 이하의 인원이 운동을 하는 시설을 말한다.

옵티멀 피트니스 이 대표는 “내 입장에선 운동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고, 고객으로선 편안히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4년 전부터 PT숍을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1650㎡(500평) 규모에 회원만 1800여 명인 대형 피트니스 센터에서 일했던 그는 “운영 구조상 트레이너 역할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대료나 트레이너 인건비 등 고정지출이 크다 보니 오너 입장에선 수익을 위해 무리하게 개인 PT를 유치하려고 하고, 그 압박이 고스란히 트레이너에게 온다는 거다. 많은 트레이너가 운동보다 영업에 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PT숍은 처음부터 퍼스널 트레이닝에 관심있는 사람이 찾아오기 때문에 트레이너가 굳이 영업을 할 필요가 없다”며 “찾아온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상담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운동법을 찾아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 내는 데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트레이너가 운동에 집중하니 당연히 고객 만족도가 높아진다. 박선영(46·반포동)씨는 “전엔 이 동네에서 가장 큰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며 PT를 받았는데, 트레이너가 자주 바뀌는 등 1대1 관리가 제대로 안 되더라”며 “여기 와선 안정적으로 꾸준히 운동하다보니 5개월 만에 6kg를 뺐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시간 활용은 자영업을 하는 사업주로서 큰 이점 중 하나다. 이송희 셰프는 “다른 식당은 하루 12시간 정도를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려야 하지만 여긴 하루에 오는 손님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내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다”며 “음식을 할 때에도 손님이 한 팀밖에 없기 때문에 서빙까지 해도 시간이 여유롭다”고 말했다.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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