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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국내 척추측만증 수술 10건 중 3~4건 집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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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22면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어요.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 살려고 정보가 없는 학생들을 속여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요. 선장·선원뿐 아니라 해경·공무원 등은 정보를 갖고 있었어요.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언론·공무원 등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정보가 없는 환자는 온갖 과잉 진료에 희생되고 있어요.”

<23>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

서울아산병원 이춘성 교수는 척추후만증·척추측만증 등 척추변형 치료의 국내 최고수로 유명하다. 환자의 건강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과잉 치료와 싸우는 ‘포청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내 외과의학의 태두인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5년 동안 허리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다른 병원에서도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지난해부터 통증이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허리가 많이 아플 때 척추를 전공하는 의사가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과잉 치료하는 전문병원이나 한의원에 가서 불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을 테니까요.”

이 교수는 40~50대에 별명이 ‘핏대’ ‘검투사’였다. 언론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황당한 비법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 밤을 새워 반박 자료를 만든 뒤 해당 의료인이나 언론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울중·고, 서울대 의대 1년 선배인 형 이춘기 서울대병원 교수와 함께 2000년 ‘아프리카엔 디스크 환자가 없다’는 부제를 단 『상식을 뛰어넘는 허리병』이란 책을 내고 의사들의 과잉 의료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프리카엔 의사가 없어 디스크를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디스크가 생겨도 자연 치유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 교수는 2003년엔 정형외과·신경외과 교수들과 함께 ‘척추포럼’을 조직해 과잉치료를 자제하자는 자정운동을 펼쳤다. 지난해엔 상업주의 의료를 비판한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눈』을 펴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1980년대엔 레이저 수술이 유행을 하더니 지금은 신경성형술·침도요법(FIMS)·혈소판 농축혈장 주사요법(PRP)·프롤로 치료 등 온갖 시술이 신기의 치료법인 양 언론을 도배합니다.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선진국의 정통파 의사들은 ‘그게 뭐냐’고 묻는 치료법들입니다.”

주위에선 이 교수 형제의 올곧은 성품은 선친 이정린 전(前) 숭실대 부총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전 부총장은 경제학자였지만 매국노로 낙인찍힌 황사영의 백서를 재해석한 책을 펴낸 용기 있는 학자였다.

그렇다고 이 교수가 앞선 연구나 치료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교수는 1996년 한국과 일본에 많은 ‘꼬부랑 할머니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 미국측만증연구학회로부터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이 연구결과는 2001년엔 저명 학술지 ‘척추(Spine)’에 초청 논문으로 게재됐다.

꼬부랑 할머니가 줄어들자 이 교수는 몇 년 전부터 척추측만증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옆으로 심하게 휜 병으로 가정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환자에게 무릎을 펴고 허리를 앞으로 굽히게 한 다음 손끝으로 땅바닥에 닿도록 해서 등과 허리가 편평한지를 체크한다. 정상이라면 등과 허리가 대칭이지만 측만증이면 한쪽 등이나 허리가 더 올라와 있다. 대부분의 측만증 환자는 오른쪽 등이 올라와 있다. 왼쪽 등이 올라와 있다면 다른 병일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이 교수는 2009년 초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척추측만증센터를 개설해 한 해 170여 명을 수술하고 있다. 그의 집도로 국내 척추측만증 수술 환자의 30~40%가 수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10세 미만에서 나타나는 측만증(EOS) 수술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학생들의 방학 기간엔 측만증 수술만 하고 보통 때엔 척추측만증 환자와 함께 다른 의사들이 보낸 척추관협착증 환자를 수술한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고 가르친다. 지난해 울산대 의대생들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도 의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온 이 교수를 ‘올해의 교수’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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