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할 수 있는 나라 … 아베 7년 전부터 각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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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도쿄 로이터=뉴스1]

1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선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 나라’를 만들려는 치밀한 각본에 따른 것이다.

 첫 총리 시절인 2007년에도 자문기구를 꾸려 집단적 자위권을 모색했으나 총리직 사퇴로 흐지부지됐던 전력이 있다. 그에겐 필생의 프로젝트다.

 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는 지난해 집권 초반엔 아베노믹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발톱을 숨겼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적극적 평화주의’란 이름으로 안보·군사 공간에서 일본의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일본판 국가안보회의(NSC) 창설→안보 관련 비밀 누설 처벌을 강화하는 특정비밀보호법 처리→무기수출 금지 3원칙 공식 폐기의 수순을 밟아왔다. 지금까지가 몸 풀기 수준이었다면 집단적 자위권부터가 평화헌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 국면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 내내 국민 감정을 자극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배를 타고 가는 그림이 그려진 위의 패널을 보여주며 “(이들이) 여러분의 아들, 여러분의 손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도쿄=뉴스1]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베 총리에게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은 전후 승전국들의 점령 정책하에서 만들어진 전후 체제로부터 일본을 해방시키는 상징적 시도”라고 말했다. 아베의 머릿속에 집단적 자위권 다음은 평화헌법 자체에 손을 대는 개헌일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보고 있다.

 아베는 15일 회견에서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최대한 자극하려 했다. “일본인 피난민을 수송하는 미군의 함정도 일본 자위대가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헌법 해석이다. (그 배에 탄 사람이) 여러분의 아들, 여러분의 손자일 수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과 유엔의 활동가들이 무장 집단의 공격을 당해도 자위대는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사례를 제시했다. “일본 대부분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이다. 도쿄나 오사카 여러분의 마을들 모두 예외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헌법 해석이 바뀌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 동남아를 무대로 한 일본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 고조로 아시아의 안보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아베는 “전후 걸어온 평화의 발걸음은 지켜낼 것” “억지력이 높아져야 오히려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아베의 안보 정책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국민들과 연립 여당 공명당의 이해를 얻기 위한 계산이 깔린 것이다.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을 자민당이 모두 장악한 일본 국회 상황과 50%를 넘는 지지율은 아베에게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헌법 해석 변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반드시 설득해야 할 공명당의 반대가 거센 것이 큰 부담이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연일 “경제 회생과 부흥이 아닌 분야에 (연립 여당이) 에너지를 쏟는 것을 국민들은 기대하지 않는다”며 견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는 20일 시작하는 자민당과 공명당 간 협의를 앞두고 공명당은 “아베 총리는 결론을 미리 상정하지 말고 자민당과 공명당 간 협의단에 모든 것을 맡겨달라”는 입장이다. 공명당이 끝내 집단적 자위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경우 아베가 어떤 강수를 들고 나올지가 초점이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은 안 된다’는 반대론이 찬성론보다 높다.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도 “헌법 해석 변경은 평화헌법의 근간인 9조를 무력화시키고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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