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52만대의 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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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 「텔레비전」수상기의 등록대수는 모두 3백52만여 대로 밝혀졌다. 10명이 한대씩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록은 불과 10년 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었다.
「에이레」·「오스트리아」·「헝가리」·「룩셈부르크」·「스위스」 등. 「아시아」지역에선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마 우리 나라가 제일 가는 기록일 것 같다. 대만도 우리와는 비슷한 형편에 있다.
TV의 보급이 행복이나 번영의 척도는 물론 아니지만, 새로운 생활「패턴」을 가져다주는 대변혁의 주인공임엔 틀림없다. 「매스컴」의 매체로서 활자 아닌 소리와 영상은 우선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에서는 하나의 혁명이나 다름없다. 세대와 교육과 계층과 환경의 차이를 넘어 그것은 영향을 미친다.
TV시대와 함께 우리는 생활 속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양상을 좌우하는 하나의 열쇠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대중 소비의 성향도 마찬가지다. 식품시장이 커진 것은 그런 TV문화의 소산이 아닐까.
의·주생활에 있어서도 TV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TV의 기능은 사회·정치의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미국의 「카터」대통령은 TV로 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 「대 석유자본」들을 『무뢰한』·『전시모리배』라고 욕설을 퍼부은 일이 있었다. 노기가 서린 목소리와 긴장된 표정과 「제스처」까지도 숨김없이 전달하는 TV의 기능은 활자의 경우에 비하면 여간 「쇼킹」하지 않다.
「카터」는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상원을 견제하기 위해 TV에서 국민을 상대로 직설을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정치를 두고 『TV는 「아테네」식 정치의 도구가 되고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TV문화는 얼굴이 잘 생기고 표정이 다양하고 「제스처」에 능란하며 언술이 좋은 사람만을 유능한 정치인으로 「클로스업」시킨다. 이것을 두고 정치는 이념보다는 연출을 중요시하게 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로는 TV가 고전적인 「스위트·홈」을 파괴했다는 비판과 반성도 일고 있다. 모든 가족들의 친선은 상대의 얼굴 아닌 TV의 화면으로만 쏠려있다. 가장의 위엄도 대화도 없는 가정.
새 시대를 연출하는 TV는 그런 변화 속의 공백을 메워주는 기능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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