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설가의 작품들에 동명 주인공 연속 등장|새 소설기법「주인공의 순환」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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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같은 인물이 각기 다른 작품의 다른 상황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소설기법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소설기법은 서양문학사에서「인물의 순환」으로 불리는 소설기법으로서 19세기의「프랑스」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것. 문학평론가인 김 현씨(서울대 불문과교수)에 의하면「발자크」(1799∼1850)의 대표작인『인문 희극』이나「에밀·졸라」(1840∼1902)의 대표작인『「루공·마카르」총서』같은 작품들이 모두 그러한 기법으로 쓰여진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그러한「인물의 순환」과 비슷한 형태로 처음 등장한 것이 60년대 후반 최인동씨의『서유기』『구운몽』『회색인』등 일련의 장편이었는데 이들 작품은「독고 준」이라는 주인공이 각기 다른 상황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인물의 순환」으로 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작 형태에 비유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70년대 초 조선작씨의「데뷔」작인『지사 총』과『영자의 전성시대』는「인물의 순환」기법에 유사하게 쓰여진 작품. 그러나 조씨의 경우『영자의…』에서 주인공이 변사함으로써「인물의 순환」은 2작품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최근 이청준·윤흥길·조세희씨 등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인물의 순환」은 최소 3편에서 5, 6편까지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씨의『떠드는 말들』『자서전들 쓰십시다』『지배와 해방』과, 윤씨의『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직선과 곡선』『창백한 중년』『날개 또는 수갑』,그리고 조씨의『칼날』『「뫼비우스」의 띠』『우주여행』『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등 이 그것인데 특히 이들 작품의 대부분은 금년 우리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이들의 그 같은 소설기법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3작가가 시도하고 있는「순환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특이한 입장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 주인공들이 작품 속에서 부딪치는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 다라서 이들과 상황의 대결도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는 통일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씨에게 있어서 그것은『삶에 있어서 말이나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 규명한다는 것』이며 윤씨나 조씨에 있어서 그것은『사회 혹은 조직에 있어서 개인적인 삶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규명』이다.
김 현씨에 의하면 인물이 순환하는 그 같은 소설기법은 첫째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입장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 없고, 둘째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다른 측면에서 사회의 면모를 바라볼 수 있으며, 셋째 1인칭·3인칭 등 형식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한 인물에 대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 등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실기법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시도될 전망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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