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재결합 후 고통받는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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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남 1녀를 둔 52세의 주부입니다. 남편과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습니다. 2년 전에 이혼했지만 1년만에 재결합했습니다. 8년을 별거하다가 이혼 상태로 1년을 보낸 뒤 다시 결합하는 데는 많은 갈등이 있었지요.

남편과 이별했던 직접적 이유는 외도 때문이였지요. 하지만 그건 이유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남편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참기 어려웠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냈으며 사람들 많은 곳에서 면박을 주기 일쑤였죠. 남들은 이런 남편을 보고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낸다"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두 아이 미래 위해 합쳤는데

결혼 전에도 남편이 화를 잘 내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내가 잘 하면 그 사람도 잘 할거야"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남편은 외도를 했습니다. 저는 자녀가 흠없이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며 남편의 외도를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나아가 결벽증에 의처증까지….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이혼은 하지 않고 오래 별거를 했어요. 자식들에게는 별거가 이혼보다 낫다고 위안하며 열심히 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남편은(자격지심일수도 있겠지만) 외도에 대한 자책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못한 걸 괴로워하다 오히려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차일피일 서류 내는 것을 미뤘으나 끝내 변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이혼을 감행했어요.

이혼 후 저는 가게를 열었고 경제적으로 오히려 더 넉넉해졌어요. 애들도 대학에 들어갔고 우리 세 식구는 나름대로 잘 살았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애들은 아빠의 빈 자리를 찾았습니다. 친구들 자녀의 결혼식장에 가면 애들 아빠가 떠올랐습니다. 울다가 돌아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남편 역시 별거와 이혼의 9년이란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직장도 잃고 재산도 잃고 무엇보다 가족을 잃었으니까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남편에게 기회를 주었고 우리는 재결합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초등학생 때 나가 대학생이 된 후 돌아온 아빠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처음엔 남편이 변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이 변한다는 건 불가능할까요?

*** 소리 지를 땐 가슴 떨려

다시 한번 악순환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저는 요즘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어요. 남편이 소리지를 때면 심장이 떨리고 어지러워 숨을 곳을 찾게 됩니다. 같이 가게 일을 하는데 "의자를 잘 놓아달라"고 하면 갑자기 의자를 발로 차고 밖으로 휙나가 버립니다.

남편은 평소엔 일을 잘 도와주고 기본적으로 성실합니다. 술.담배.돈 낭비도 하지 않아요. 문제는 이런 좋은 점들을 단 한번 성을 냄으로써 모두 날려 버린다는 것이죠. 제 고통이 스트레스를 넘어 병이 됐을 정도니까 어느 정도 심각한지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말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큰아들이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이렇게 포기하면 마음이 더 편하고 받아들이기가 쉬워집니다. 하지만 저도 여자이고 아내이고 싶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참는 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습니다.

서울 도봉구에서 52세 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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