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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달음질 열두 해…많이도 달라졌다|새 풍조와 의·식·주의 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니·스커트-67년 봄에 상륙>
1965년 전후의 우리나라 여성들은 주로 50년대 「유럽」에서 유행한 H 「라인」A「라인」Y「라인」과 자루모양의「색·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한국 현대여성 복식사에서 가장 요란한 하반논쟁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유행을 했던 「미니·스커트」가 이 땅에 상륙할 것은 정년 봄.「디자이너」 박윤정씨의 「패션·쇼」에서 당시 미국에서 갓 귀국한 가수 윤지희양이 매력적인「미니」맵시를 선보여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70년대 초까지 계속된「미니」열풍은 무릎 위4∼5교에서 17cm까지의 이른 바 「마이크로미니」까지 생겨 과도한 노출이 크게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다. 그래서 73년에는 「미니」의 퇴폐여부를 가리기 위해 경찰관이 자를 대고 치마기장을 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청바지와 t셔츠-대학가를 휩쓸어>
젊은이들의「유니폼」으로 일컬어지는 청바지와 「T셔츠」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초년부터였다.
그후 73, 74년께에는 청바지와 청치마가 대학가를 주름잡았고 심지어는 어린이·가정 주부 층에 까지 침투, 「블루진」 특유의 젊음의 멋과 실용성이 크게 「어필」 했다.
유행과는 별 상관없이「블루진」은「T셔츠」와 함께 오늘날까지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차림으로 남아있다.

<다양한 모드-h라인의 등장>
73년께부터 다시 치마기장이 내려가「미디」가 나타났고 「맥시」도 선보였으나 그 어느 것도 「미니」선풍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유형의 물결을 타고 민속풍 의상의 분위기를 살린 넉넉하고 여유 있는 H「라인」이 애용되고 있으나 「타이트·스커트」 도「테일러드·수트」도 입혀져 이제 단일한 「모드」의 유행시기는 지난 것 같다.

<보세옷-값 싼맛에 애용>
68년부터 시중에 나돌기 시작한 보세옷은 원래 외국으로 수출하고 남은 「로스」분 (공식적으로 생산량의 3∼5%이 흘러나온 것.
70년대 이후 의류 수출이 크게 늘자 보세옷도 남녀노소용의 다양한 종류가 나타나 서울한남형과 평화시장 보세옷 가게가 성시를 이뤘고 주택가에까지 보세옷가게가 생겨 보세옷을 걸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기성복-옷감소비 2·7배로>
65년 국민 1인당 섬유소비량 2·6kg이 76년에는 7kg으로 2·7배가 늘었다. 섬유수출액은 65년 5천2백43만「달러」거 77년 33억 「달러」예정으로 12년간 무려 62배의 놀라운 성장을 했다. 그러나 기성복은 아직 보편화되지는 못한 상태.
서울 평화시장·남대문 대도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전국에 판매되고 있는 대중적인 기성복은 지난 12년간 양은 풍부해졌으나 질에는 크게 발전이 없었다. 특히 국민표준 체격측정이 되어 있지 않아 기성복 「사이즈」설정이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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