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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와 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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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소와 질소는 원자의 세계에선 이웃 사촌쯤 된다. 질소의 원자번호는 7, 산소는 8, 원자 기호도 질소는N(nitrogen), 산소는 O(oxygen). 「알파베트」 배열순으로나 「아라비아」 숫자의 차례로 보아 바로 이웃해 있다.
병원 마취실 에서도 이들 두 원소는 사촌의 사이다.
마취과 의사들은 이른바 「고급 마취」를 할 때는 이 질소를 쓴다. 고급 마취란 가령 제왕절개 수술과 같은 경우에 필요로 하는 마취다. 빨리 마취시키고, 또 금방 그 마취를 풀어야 할 때는 질소 호흡에 의한 고급 마취를 하게 된다. 질소 마취를 할 때도 역시 산소는 함께 공급해야 호흡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마취는 역시 전문적인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노련한 외과의사들도 질소에 의한 고급 마취는 반드시 마취과 전문반에게 의뢰한다. 「에테르」 마취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과수술을 받을 때의 마취는 흔히 「에테르」용을 사용한다. 이 경우는 환자가 2차 마취의 경지에까지 들어가며, 마취의 정도도 4기에 이 만큼 깊고 넓다. 마취는 한마디로 인체의 근육을 마비시켜 아픔을 느끼지 못 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마취의 정도가 깊어지면 자칫 호흡 근육까지도 마비시켜 생명을 위협하는 수가 있다.
따라서 마취과 의사들은 환자의 심장에 산소를 강제로 공급해 주어 호흡을 촉진시킨다. 마취의 정도가 4기에 이르면 사람은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산소의 공급은 필수적이다.
요즘은 마취의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달해 4기까지의 깊은 마취는 회피하고 있다. 2기 정도로 마취시키고 보조약액을 주사해 주는 것이다. 2기의 마취 상태일 경우, 「메스」를 대면 아직도 근육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막기 위해 「큐라레」(Currare)와 같은 주사약을 쓴다.
「큐라레」는 남미의 토인들이 짐승을 사냥할 때 화살촉에 바르는 약이다. 이것은 마전과 식물의 잎사귀에 흐르는 진액이다. 짐승이 그것을 바른 화살에 맞으면 단숨에 다리가 뻣뻣해져 더 이상 뛰질 못 한다.
산소나 질소는 무색·무취에 있어서도 똑 같다. 화학반응을 거치지 않고는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 용기에 각각 다튼 빛깔을 표시해 식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산소와 질소는 이웃 사촌이지만 그 용도에 따라서는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최근 적십자병원에서 일어난 질소에 의한 질식사 사고는 부주의가 빛은 비극이다. 적어도 인간의 생명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남다른 주의력과 성실과 양식이 있어야 한다. 이번 사고도 생명 경시 풍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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