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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김한길·안철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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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안철수·김한길 대표는 금슬(琴瑟)이 좋아 보인다. 11일엔 팽목항도 함께 찾았다. 일전에 안철수 대표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정말 안철수·김한길 대표는 프로도와 백발의 간달프쯤 되는 콤비 같다. 너무 밀착해 다니니 찡그리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정치 신인인 안 대표의 독립성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의사결정만 두 사람이 더블로 잘 내린다면 밀착해 있든, 따로 떨어져 다니든 무슨 상관?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동안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연이어 있었다. 국가마저 개조해야 한다는 판에 야당의 결정은 춤췄다.

 #1. 야반도주하듯 발표한 광주 공천

 5월 2일 밤의 일이다. 안·김 대표가 윤장현 후보를 광주시장 후보로 결정했다. 이른바 경선 없이 지도부가 후보를 낙점하는 ‘전략공천’이다. 말이 좋아 전략공천이지 ‘하향식’이나 ‘낙하산’이란 말을 넣는 게 정확하다. 대변인이 낙하산 공천 발표를 하러 기자들 앞에 나타난 시간은 밤 10시45분. 3일부터 6일까지는 5월의 황금연휴였다. 신문도 안 나오고, 방송도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갈 때였다.

 황금연휴 전날 야반도주하듯 발표한 이유가 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상향식 공천은 민주적이고, 하향식은 비민주적이라는 데 동의하진 않는다. 엉터리 여론조사 경선이나 돈과 조직으로 하는 무늬만 국민경선보다는 지도부가 자기 책임하에 좋은 사람을 선정하고 표로 심판받는 게 차라리 떳떳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과 판단이 공정해야 한다. 안 대표는 광주시장 후보군이던 이용섭 의원이나 강운태 시장보다 그가 더 개혁적이네, 시민단체 출신으로 제2의 박원순이 될 수 있네 하는 따위의 주장을 했지만 구차했다. 윤 후보는 세상이 다 아는 안철수 사람이다. 그가 민주당 출신이었다면 안 대표가 욕을 먹어가면서 전략공천을 강행했을까. 제3자가 보기엔 딱히 더 나을 것도 없어 보이는 내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 경쟁자들의 피선택권을 박탈했으니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이 의원과 강 시장은 ‘한길 철수의 마음’에 농락당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적어도 경선은 하게 될 줄로 안심(安心)하고 있다가 ‘안심’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았다. 혹 ‘안심’의 뒤에 ‘김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가 안산시장을 밀어내고 후보로 전략공천받은 걸 보면 광주와 안산을 주고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2. 기초연금 여론조사

 하루 전인 5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다른 문제로 시끄러웠다. 원내대표단이 새누리당과 기초연금 절충안에 합의했는데도 야당은 다시 여론조사를 했다. 절충안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기초연금을 조금 덜 받게 하는 여당 안을 받아들이되 국민연금을 적게 받는 사람들은 기초연금을 상한액(20만원)까지 매달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안·김 대표는 기초연금 문제를 결론짓는 과정에서 자기 판단이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웠다.

 강경파 의원들이 이조차 목숨을 걸고 반대하니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가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결단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자신의 언어와 메시지로 설득해야 할 사안을 정치인이 자꾸 여론조사에 기대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안 그래도 여론조사 과잉·범람의 시대다. 여론조사가 공직 후보자까지 결정한다. 정책까지 여론조사로 정하려 한다. 내 사람 챙기는 데는 과감하면서 기초연금 같은 중요한 정책에 대한 결정은 선뜻 못 내려서다. 특히 ‘기초’란 단어만 발견하면 여론조사를 하고 싶은가 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명분으로 삼았던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할 때도 그랬다. 안·김 대표는 이상한 문구로 여론조사를 한 뒤 퇴로를 마련했다.

 이대로라면 새정치민주연합엔 리더십은 없고 여론조사만 남을 것이다. 여론조사에 기대는 게 옳은지 그른지까지 여론조사로 판단하겠다고 할지 모르겠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