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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은 비빔밥…여러 분야를 아울러 전체를 이해하자는 거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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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60)은 자연과학자이자 통섭학자입니다. 통섭이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벽을 넘어 넘나든다는 뜻이에요. 학자 최재천은 개미 같은 곤충에서 시작해 까치와 영장류, 돌고래 등을 연구해왔습니다.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와 삼팔이, 춘삼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맡기도 했죠. 통섭학자답게 장르 구분없이 다양한 책을 섭렵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저술하고 번역한 책만 40여 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학자 최재천을 만나기 위해 동물을 사랑하는 학생 세 명이 국립생태원을 찾았습니다. 동물학자가 되고 싶은 황서윤(서울 동북초 5), 수의사가 꿈인 김진아(서울 동북초 5)양과, 과학자를 꿈꾸는 조우연(대전 서원초 5) 학생기자입니다.

지난달 24일 자연과학자이자 통섭학자인 최재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충청남도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은 아이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진아·황서윤 (서울 동북초 5)양과 조우연(대전 서원초 5) 학생기자.

-(조우연, 이하 조) 지난 해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봤어요. 제돌이를 방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돌고래는 바다에서 하루 동안 100㎞를 수영해요. 유명하다는 국내외 수족관을 여러 곳 가봤지만 돌고래가 100㎞를 달릴 수 있는 물탱크는 보질 못했죠. 또 돌고래 연구를 하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인데, 돌고래 쇼에서 보여주는 묘기는 돌고래가 평소에도 하는 행동들이에요.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조련사의 명령에 따라 이런 행동들을 하도록 훈련하는 거죠. 인간의 오만이라 생각해요. 돌고래 묘기가 그렇게 보고 싶으면 돌고래 사는 곳을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돌고래가 출몰하는 지역에 배를 세운 후 다섯 시간 쯤 기다리면 돌고래가 나타나 한두 번 묘기를 보여줄 겁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오는 게 맞다고 봅니다.”

최 교수의 안내를 받으며 국립생태원을 돌아보고 있는 아이들.

-(김진아, 이하 김) 지금까지 연구한 동물 중에서 제일 애착이 갔던 동물은 무엇인가요.

“중앙아메리카 있는 코스타리카의 몬테 베르데라는 산악지대에서 연구한 아즈텍 개미입니다. 아즈텍 개미는 대나무처럼 생긴 트럼핏 나무속에 집을 짓고 살아요. 높게 자란 나무를 베어 쪼개보면 여왕개미가 한 마리 나오죠. 그런데 처음부터 하나의 여왕개미가 나라를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각기 나라를 둔 여러 여왕개미가 있고, 이중 한 마리가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여왕개미는 전쟁에 이기기 위해 다른 여왕개미와 동맹을 맺습니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일개미 다섯 마리를 기르는 동안, 동맹을 맺은 네 마리의 여왕개미가 스무 마리 일개미를 길러냅니다. 아즈텍 개미의 전쟁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먼저 수확해 집에 가져다 두는 경제전인데, 일개미를 많이 키워 빨리 먹이를 챙기는 나라가 이기죠. 흥미로운 점은 동맹의 수준입니다. 종이 다른 붉은 개미와 검은 개미의 동맹이에요. 우리가 전쟁에 이기기 위해 오랑우탄과 동맹을 맺는다 생각하면 돼요. 자연계 최초의 발견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연구입니다.”

-(황서윤, 이하 황) 교수님이 연구한 것 중 가장 신기한 동물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저는 동물의 구애행동(courtship) 연구를 많이 한 편이죠. 박사학위 때 연구한 민벌레는 길이가 2㎜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곤충입니다. 썩어가는 나무껍질 밑에 모여 살아요. 수컷은 머리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더듬이로 상대의 머리를 쳐보고 구멍이 있고 없음에 따라 암컷을 구별합니다. 상대가 암컷일 경우 수컷은 땅에 입이 닿을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고 더듬이를 뻗치며 암컷에게 다가갑니다. 암컷이 다가가면 수컷 머리 구멍에서 액체 한 방울이 올라옵니다. 암컷이 액체를 빨아먹으며 짝짓기가 시작되죠. 연구를 하며 알에서 깨어난 수컷과 암컷을 따로 길러봤어요. 따로 자란 암수 민벌레를 어느 날 만나게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되는 수컷이 더듬이를 이용해 상대가 암컷인 것을 알자 바로 구애행동을 하더군요. DNA 안에 프로그래밍 돼 있다곤 하지만, 참 신기했습니다.”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 있는 극지관에서는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을 볼 수 있다.

-(황) 제가 신기했던 동물은 동고비란 새였어요. 동고비는 진흙을 사용해 둥지를 짓는데, 젖은 진흙이 말라 단단한 집이 될 거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동고비는 참새 크기의 우리나라 텃새예요. 나무를 기어가듯 다니는 나무타기의 선수죠. 동고비는 딱따구리가 만들어 놓은 나무속 둥지 입구에 진흙을 발라 제 몸에 맞게 집을 새로 짓습니다. 조상이 했던 일이 자손에게 전달된다고 봐야겠죠. 동고비라는 종의 진화의 역사 동안 이런 행동을 할 줄 아는 동고비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린 겁니다. 그런데 각 둥지의 모양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동고비가 지은 둥지의 모양이 제각기 다른 이유인데, 한 마리 한 마리가 크면서 배우는 과정이 다르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점은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역사는 아닐 겁니다.”

-(김) 겁이 많은 동물과 친해지는 방법이 있을까요.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분야를 동물행동학이라 해요.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 존 루트 등 여성들이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분야죠. 동물행동의 연구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기다리며 하는 일이에요. 서두르면 안 됩니다.”

-(김) 동물의 언어를 사람이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까치 연구를 하며 십몇 년째 숫자를 적고 있어요. 이쪽 까치가 ‘까까깍’ 울면 저쪽에서 ‘까까까까깍’하고 대답하죠. 예를 들어 까치가 “나야”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생각해보죠. 같은 단어라면 일정한 음절만 반복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까치의 음절은 계속 바뀝니다.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인간이 못 알아들을 뿐이에요. 이런 연구들을 요즘 학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조) 통섭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통섭은 비빔밥이다. 이게 가장 쉬운 답 같네요. 원자를 연구하기 위해 물리학이란 학문이 생겼고, 인간의 몸에 있는 호르몬을 이해하기 위해 화학이란 학문도 생겼어요. 그렇지만 몸 속 호르몬 하나 공부했다고 해서 인간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이 경제학과 사회학, 법학과 만나야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대죠. 통섭은 비빔밥처럼 이것저것 조금씩 넣고 섞는 것을 말해요. 우리 밥상을 봐도 밥 한 그릇 두고 여러 개의 반찬을 먹죠. 이렇게 여러 개를 합하고 전체를 이해하자는 게 통섭입니다.”

-(황) 동물학자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공부를 잘하는 게 유리하겠죠. 현장에서 더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으니까요. 전공은 생물학과가 유리하긴 하나 그렇다고 전공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대학원에서는 어느 교수가 어떤 동물로 무슨 연구를 했는지 잘 살펴본 후, 원하는 교수를 찾아가 연구하고 학위를 따면 됩니다.”

-(김)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인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참을성이 많고 진심으로 동물을 사랑해야겠죠. 다만 수의과에서는 가축의 질병과 영양을 주로 공부합니다. 병에 걸린 동물을 치료해주고 싶다면 수의사가, 동물을 관찰하고 보호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생물학과에서 동물행동학자나 동물생태학자가 되는 게 맞겠죠.”

-(조) 꿈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내 안에 꿈자리를 여러 개 만들어 예전의 꿈, 그리고 요즘에 꾸는 꿈을 모아두세요. 그중 하나가 실현되면, 구석에 있던 꿈 꺼내 다시 이뤄도 좋겠죠. 꿈꾸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많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멋있게 살아보세요.”

-(조) 교수님이 바라는 국립생태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생태학은 경제개발을 하던 시절보다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최근 매우 중요해진 학문이에요. 우리나라에 생태학의 기초를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서천까지 오게 됐죠. 얼마 전 생태원 안을 걷다 이곳을 찾은 아주머니 세 명을 우연히 만났어요. 둘러본 소감을 물었더니 참 좋다고 하더군요. 다른 곳은 너무 꾸민 티가 나는데, 여긴 자연의 모습에 가깝다는 겁니다. 생태학을 연구하는 곳이니 자연의 모습 그대로 두자는 것이 취지였죠. 여길 찾은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를 접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의 산과 바다에서 자연과 함께 자랐다. 그는 “공부보다 산과 들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중학교 시절 꿈은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미대에 가는 꿈을 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의예과에 지망했다. 하지만 재수 끝에 붙은 학과는 담임선생님이 몰래 적어 놓은 2지망 동물학과였다.

농구부와 독서·사진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던 대학생활 3년을 두고 그는 “공부만 했으면 몰랐을 다양한 삶의 경험을 쌓은 시기”라고 말한다. 전공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4학년 때다. 결국 동물학과에서 꿈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한국에 온 미국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조수로 일하며 이 생각은 확고해졌다. 에드먼즈 교수야말로 자연에서 놀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좋아하던,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자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실제 공부한 시간보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궁리한 시간이 더 길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왜 하는지를 아는 것. 이유를 안 다음의 공부는 이유를 모르며 공부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의 방황, 그리고 다양한 취미활동까지, 그는 “지금껏 겪은 다양한 경험 중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모두 통섭학자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사(1986)와 박사(1990)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생물학과 전임강사(1990~1992), 미시건대 생물학과 조교수(1992~1994)를 지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1994~2006)에 이어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자교수(2007~)로 재직 중이며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2013년 11월~)을 겸임하고 있다.

정리=이세라 기자
사진=우상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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