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유언장에 담긴 비밀 … 존 그리샴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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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속죄나무 1·2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각 권 400·424쪽
각 권 1만2800원

제 집을 찾아든 듯, 딱 맞는 옷을 입은 존 그리샴은 거침없었다. 실화소설이나 야구소설 등을 기웃대며 ‘외도’한 탓에 칼이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전공 분야’인 법정 스릴러의 세계에서 그는 고수였다.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게 칼을 휘두르는 대가의 면모는 살아있었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과 얽힌 살인 사건을 다룬 그의 데뷔작 『타임 투 킬』의 속편답게 이번 작품도 진지하고 묵직하다. 문제 의식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그리샴의 독자에게 더 반가운 것은 『타임 투 킬』의 주인공이었던 풋내기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의 귀환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이크가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흑인소녀 강간 사건(칼 리 헤일리 사건) 재판을 승리로 이끈 뒤 3년이 지난 시점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던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일약 유명 인사가 됐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실제로 손에 쥔 수임료는 900달러에 불과했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그의 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살 곳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은 다시 주사위를 던지고, 제이크는 또 한번 미시시피주를 뒤흔드는 소송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폐암을 앓던 71세의 자산가인 세스 후버드가 2400만 달러(250억원)의 유산을 남긴 채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고, 그의 자필 유언장이 제이크에게 배달되면서다.

 ‘전 재산의 90%를 흑인 가정부에게 상속하고 자손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말라’는 충격적인 내용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유족과 제이크 사이의 치열한 법정 투쟁이 시작된다. 소송은 흑인 가정부와 백인 유족이라는 흑백 대결의 양상으로 치닫는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동기에 대한 각종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는 가운데 제이크는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지만,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극적인 반전(물론 뉴욕타임스의 리뷰대로 ‘매의 눈을 가진 독자는 약간의 짐작이 가능’하다)은 마지막까지 완주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 안고 있는 심연, 그 어둠의 깊이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현옥 기자

되돌아본 존 그리샴의 데뷔작

미국 미시시피주 소읍 클랜턴의 젊은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를 앞세워 인종갈등으로 얼룩진 살인사건을 다룬 『타임 투 킬』(1989)은 ‘법정 스릴러의 대가’ 존 그리샴의 첫 작품이다.

지방 변호사이던 존 그리샴이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업무 전에 쓴 이 소설은 출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그의 다른 작품이 유명해지고 1996년 매튜 맥커너히와 샌드라 블록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500만 부 넘게 팔려 나갔다.

 미시시피주 포드 카운티에서 열 살의 흑인 소녀가 마약에 취한 백인 2명에게 강간당한 뒤 무참히 버려지지만 범인들은 보석금 심사를 받고 법정을 나선다. 소녀의 아버지인 칼 리 헤일리가 범인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해 살해하고, 사건은 쿠클럭스클랜(KKK)단까지 개입하는 인종문제로 번진다. ‘승소 가능성 제로’인 재판을 맡은 신참 변호사 제이크는 KKK단의 방화로 집을 잃고 자신을 경호하던 군인의 살해 사건도 겪지만, 힘겨운 최종변론을 마치고 감동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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