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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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에 얽힌 말썽은 묘하게 많다. 지난 두 「올림픽」대회가 있는 동안에「칠레」 「이란」 「스위스」 「불가리아」등 11개국의 국가가 바뀌었다.
소련은 지난 6월에 새 국가를 만들었다. 「스위스」도 2년 전에야 건국7백년만에 처음으로 국가를 제정했었다. 그러나 이것을 부르는 「스위스」 사람들은 별로 없다. 노래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다. 이 나라는 국민투표로 국가를 정했다. 예전에는 영국 국가를 불러왔었다. 지난 72년에 노동당정권이 성립되자 「고드·세이브·더·퀸」을 부르지 못하게 했었다.
이어 74년에는 국가를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옛 영국가를 부르는 주도 많고, 새 국가와 회 국가를 반씩 섞어 부르는 곳도 있다.
「캐나다」도 셋씩이나 되던 노래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도 말썽이 많다. 작사자가 윤치호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그게 확실치 않다. 안창호와의 합작이라는 얘기도 있다.
작곡자는 안익태가 분명하지만. 여기에도 말썽이 있었다. 「불가리아」의 민요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안익태의 명성을 시기한 일부 사람들의 소견 좁은 장난이었다.
만년의 안익태에게는 친구가 퍽 적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그가 계획한 국제 음악제가 3년만에 좌절된 것도 이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지나친 독선적 태도하며 완고한 성격이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실의 속에서 서울을 떠나게 만든 잘못을 사죄할 길이 이젠 아무에게도 없다.
그가 세계적인 명 지휘자가 못되고 그가 작곡한 『코리언·팬터지』가 대단치 않아도 좋다. 그는 엄연한 우리 애국가의 작곡자이며 이 곡을 위해 그가 쏟은 애국심의 열도만으로 라도 그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추모해 마땅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조국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병상에서 이 편지를 쓰는데 내가 아프다는 소문을 널리 알리지는 마십시오. 걱정하실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썼던 안익태의 유해가 6일 돌아온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라던 그도 마음 편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제 국립묘지의 국가유공자 제2묘소에 묻히게 된다. 그러나 그를 따돌리던 풍토가 과연 얼마나 바뀌어졌을까. 애국가를 바꾸자는 소리도 죽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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