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의 불청객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나라의 가족구조도 점차 이른바 「핵가족」의 형태로 변모해감에 따라 가족의 구성원은 주인내외와 어린이2∼3명의 단출한 경우가 많아져가고 있다. 이런 경우 평안한 집안살림을 영위하는데는 무엇보다도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이 단란하게 지낼 수 있는 주위환경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 때문에 주택의 건축양식마저도 번잡한 사회나 직장에서 해방되어 전적으로 가정생활의 편의와 충분한 휴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도시 주택가에는 월부상품 외판원을 비롯한 각종 상인들이 수시로 초인종을 눌러대 대낮 집안을 지키는 주부들을 놀라게 할뿐만 아니라 아직도 걸인 재건대원 등 정체불명의 불청객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대며 거의 하루종일 대문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어 가정의 안정을 흔들어놓고 심한 경우에는 행악까지 빚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 불청객들은 부녀자 혼자 있는 집에도 마루나 안방까지 성큼성큼 들어서 무례한 행동이나 언사로 생떼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낮도둑으로 돌변하는 사례까지 빚고있는 형편으로 이쯤 되면 이들은 확실히 시민생활의 안녕을 위협하는 요인의 하나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상품의 선전과 외판을 목적으로 소비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직업인이요, 이는 오늘날 산업사회의 공통적 판매전술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판매조직이 파상적으로 확대되고 판매전략도 고도로 조직화되면서 방문판매의 이점이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평가되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에는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과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에티케트」를 지키도록 몸에 배는 철저한 훈련이 그 전제가 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덮어놓고 집안에까지 들어와 재미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상품에 대한 호기심은 커녕, 저항감과 짜증을 느끼게 한다든가 또는 무턱대고 생떼를 쓰는 식의 판매술로써는「세일즈」본연의 목적도 수행될 수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외판원이나 행상이 여느 직종이나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직업인 이상, 그들의 역할이 만의 하나라도 사회적 공동생활을 저해하거나 이웃에 폐를 끼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직업을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으로만 착각한 나머지 제각기 자기본위와 이기심에만 사로잡혀 목적달성만을 꾀하는 세태가 빚어진다면 안정된 생활의 궤도는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현대인의 생활은 계속되는 「스트레스」로 짜증이 날 지경인데 가정에까지 또 각종 불청객들의 극성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확보하지 못하고 휴식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이로 인한 여파는 대인관계의 갈등, 정서의 불안정 등의 형태로 사회문제와 직결돼 나타나지 않으리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판원 외에 아주 젊고 그럴듯한 어엿한 옷차림의 잡배들이 동네마다 집마다 금품을 강요하고 돌아다니는 세태는 딱하기만 하다. 이들이 정상적인 일자리에서 떳떳이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불로소득과 갈취공갈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사회적량인은 발본이 되어야 한다.
행정당국은 이러한 불량배와 낮도둑의 근절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주어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