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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라」가꾸기 위한「캠페인」(7)한라산|망발 부채질하는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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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리목의 새벽길은 구상나무의 내음. 그렇게 싱싱하고 향긋할 수가 없다. 코끝이 싸할 정도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는 10m밖이 차단됐으나 수목의 내음을 통해 어디쯤 왔는지 짐작케 된다.
어리목 입구에서 2시간여. 새벽5시께부터 밀어닥친 안개며 먹구름이 한 때는 천둥과 우박까지 몰아왔다. 이 순식간의 어처구니없는 변화가 역시 한라산의 신비.

<쓰레기… 쓰레기>
그 통에 일부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그만 하산하고 훨씬 줄어든 일부만이 끈질기게 전진한다. 60도 경사의 오르막이 끝나면 편편하고 완만한 고원의 철쭉 밭. 백록담까지 4㎞나 뻗친 이 능선엔 그리 짓궂던 안개도 따라 오르지 못한다. 아침햇살에 유난히 맑게 분홍색의 바다가 펼쳐졌다. 『워-이 워-이』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으로 보아 수백 명은 넉히 될 성싶다.
원시상태의 자연이란 아름다움 이전의 감명을 주는 것. 여기엔 조작도 더러움도 없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흉한 자국을 남긴다. 도끼를 휘두른 나무둥치, 모닥불 놓은 숯 더미, 깡통·유리병·「비닐」봉지의 쓰레기, 쓰레기… 「국립공원」이니 「천연보호구역」이니 하는 지청조치는 사람의 피해를 막자는 건지 관광객을 더 부르는 수단인지 도무지 분명하게 해석이 안 된다.
한라산 자체를 눈여겨보고 보호에 나선 것은 64년. 이 때 전면적인 학술조사에 이어 65년엔 세계 자연자원보호연맹(IUCN)에 보고돼 관계 전문가들이 5차례나 다녀갔다. 그리고 해발1천m 이상의 2천5백만평을 천연기념물(182호)로 지정한 것이 66년, 70년엔 더 광범하게 약 4천4백만평을 국립공원이라 이름 붙였다.
산이 훌륭하고 신비로워 사람들은 애써 찾아든다. 보호구역이라니 더욱 밀어닥친다. 거기에 정부의 개발계획은 인파를 한층 부채질한다. 과연 관광객·등산객들은 보호구역이고 아니고를 확실하게 구분해 조심할 줄 알까. 과연 개발계획은 먼 훗날의 제주도를 생각하며 면밀히 짜여진 것일까.
75년도에 짜여진 제주도 종합개발 계획은 무려 1천4백억원이 넘는 투자였다. 한라산이라는 천연자원을 정점으로 하여 정부와 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내용이다. 그 계획은 그동안 상당히 진척돼 백록담으로 향하는 돌계단 등산로가 5갈래로 뻗었고 윗세오름 진달래밭·왕관릉 등엔 산장이 세워졌다. 또 영실까진 5.6㎞의 포장도로가 개통됐다. 그리고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인데 그 주변의 더러움이란 말할 수가 없다.

<주말엔 몇 만명씩>
자연상이 가장 좋은 영실·어리목·윗세오름의 명물인 구상나무의 하양 고목군락은 밤샘하는 등산객이 모닥불 땔감으로 베어내 이젠 얼마 안 남았다. 해발2천m에 달하는 경상분화구(백록담) 지대의 노가리·구상나무 등 관목식생은 세계적으로 드문 예인데 분화구안 벽은 초목이 남아나지 못하며 줄기줄기 토사가나 못물이 훨씬 잦아들었다.
철쭉꽃철인 5월에서 6월초까지 백록담에 모여드는 등산객은 주말이면 2만∼3만명. 이에 한술 더 떠서 영실계곡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한라산은 곧 식후의 소풍지가 될 판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해서 한국자연보존협회(회장 이민재)가 지난5월 「케이블카」설치를 허가한 도 당국과 문화재관리국에 철회건의서를 서둘러 냈다.
그 이유인 즉 ①한라산은 3백60개의 자화산을 가져 한국 전체 식생의 약50%인 1천7백여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②그 중 한국 특산식물은 구상나무 눈향나무 털 진달래 등의 군락과 암해 시로미 구름이나리아재비 제주구절초 손바닥난초 한라버들 들쭉나무 개들쭉 등 2백여종이다.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은 설초오 한라꿩의 다리 한라개승아 제주황기 제주 달구지풀 섬쥐손이풀 좀시호 욋미나리 구름떡쑥 바늘엉겅퀴 섬메발톱 섬조릿대 등 1백 여종이나 돼 세계적 식물의 연구도장이다.
그래서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실정이다. ③지금까지도 국립공원관리직원은 입구에서 돈 받는 게 고작일 뿐 공원감시와 단속을 아예 외면하고있다. ④그 결과 이미 산의 식상변화로 무당개구리·한란·비자란·중란·제주황기·솔잎란 등 귀중한 자원이 멸종되거나 멸종직전에 있다. ⑤현재 더 이상 등산객을 대량 수송하면 한라산은 오물과 폐기물로 오염되고 고산 식생대가 파괴, 영원히 환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선진 외국의 경우 고산 식생대가 있는 지역은 꼭 필요한 곳에 2∼3m의 길을 만들고 양쪽으로 철책을 시설하는 등 원시림 속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 관리하고있다. 이런 원시상태의 보존은 인류 미답지의 지각변화와 동식물의 생육과 이동현상 등에 관한 관찰로 지구의 자원변천사연구에 더 없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프스」산에 있어선 식생이 전혀 없는 지역에 한해 「케이블카」시설을 해놓았다.

<철책 둘러 보호를>
설악산 「케이블카」는 시각적인 풍치저해만이 아니다. 그로 인한 초목암석의 피해는 눈에 보이지만 그 소음 때문에 2㎞이내의 모든 짐승과 새가 자취를 감췄음은 관계 학자들이 익히 아는 사실이다.
영실은 한라산 중에서 가장 웅장한 모습을 보이는 명승지. 그래서 예전엔 말소리만 크게 해도 신의 노여움을 사기 때문에 안개가 끼고 사람이 빠져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제주도민이 두려워하고 신성시하는 지역이다.
한라산 등산객의 증가추세는 75년 4만2천명, 76년 6만1천명, 77년 5월말 현재 3만명. 이 숫자는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입장료를 받은 수일뿐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케이블카」시설을 하면 연간 최소 10만명은 수용할 계획이라 한다.
한라산을 상대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싶어하는 도와 건설부는 비단 「케이블카」계획만이 아니다. 천연보호구역의 경계이자 국립공원 경내인 영실·성판악·어승생 등지에 숙박시설과 오락장 등을 집단적으로 건설할 속셈이다. 그것도 특수기관에 의한 조심스런 시설이 아니라 민간자본을 유치, 영실지구에는 이미 지난 4월 P건설에 허가를 해주었다.
역시 민간자본이란 자연보호는 안중에 없고 더욱 영리를 추구하기 마련.
정부가 82년까지엔 제주일원을 국제적인 관광지로 가꿀 꿈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항건설과 「노·비자」자유지역화 안 등이 부수적으로 검토되고있다.
하지만 관광은 유흥이나 오락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라산보다 훨씬 수림이 울창한 산림은 공해가 심하다는 일본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다 제주를 방문한 일인관광객은 한결같이 극구 찬양한다. 그것은 제주만이 가진 옛 모습과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당국이 서두르는 대로 개발한다면 어쩌면 80년대, 90년대쯤엔 천연자원도 제주의 특징도 가셔버린 뒤의 꿈이 되지 않을까. 그 막대한 투자로 제주도다운 점을 없애버린다면 버글거리던 관광객의 발길은 자연 끊어질게 확실한 때문이다.

<미개발이 더 매력>
옛 조상들이 자의는 아닐지라도 한라산을 원시대로 놔두고 또 그들 나름의 생활을 해온 까닭에 오늘 그것은 부의 밑천이 된 셈이다. 일그러진 초가집이며 돌담으로 둘러싸인 주택과 밭, 물긷는 허벅이며 해녀 등 어느 하나도 다른 지방에선 보지 못하는 특유의 풍물. 서낭당이나 돌하루방, 심지어 민요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제주도다운 것이기에 사람들은 기이하게 보고 듣는다.
제주도를 찾는 모든 관광용이 반드시 한라산 정상을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제약을 받는데서 더 매력이 지속될는지 모른다. 산만 오르기 위해서라면 제주엔 등산객밖에 필요 없는 일. 차라리 그 투자를 일반적인 고유색 유지에 돌려쓴다면 한라산의 자연도 살고 제주다운 풍물도 빛나게되리라.
도당국은 최근 한라산 개발계획에 대한 반대여론이 심하게 일어나자 『보호우선』이라고 후퇴할 기미를 보인다. 그러면서 막상 광범하고 근본적인 대책엔 등한하다.
왜 이 섬이 관광지화 했는지의 원인을 살피려 하지 않고 목전의 관광수입 숫자놀이만 앞세운다. 그래서 당장은 소득격증의 「그라프」를 그리게 되겠지만 훗날 관광자유지역화가 되었을 때를 내다보자. 보잘 것 없어 아무도 안 찾는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줘서야 되겠는가. <제주=신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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