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오락프로 장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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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과 10월이 이사철인 건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SBS도 4월 20일을 기해 봄단장(개편)을 한다. 아침 11시대에서 무려 10년 동안이나 버텨온 '좋은 친구들'이 살던 자리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게 눈에 띄는 변화다.

점령군(타사 출신들이 주축이다)에게 밀려난 '좋은 친구들'은 4월 13일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바로 옆집(TV 동물농장)은 잔치(1백회 특집)를 벌이는데 한쪽은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상태라니 '인기무상'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프로그램의 영고성쇠는 한 나라의 운명과 비슷하다. 내우외환에 잘 견뎌야 오래간다. '좋은 친구들'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외침(外侵)에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평소 프로의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제작진도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남희석의 최고의 만남'이나 강병규.신정환 등 이런 부류 프로의 단골들이 대거 등장하는 '내기 브라더스'가 장수 프로의 자존심을 지켜보려 무던히 애쓴 흔적은 있지만 그보다 한 단계 높아진 시청자의 욕구에 부응하진 못했다.

오락프로의 수명은 전적으로 시청자의 변화무쌍한 기호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시청자가 '질릴' 때까지 실컷 즐기라고 하다가는 마침내 길을 잃기 쉽다('실컷'이라는 말 자체가 '싫어질 때까지'라는 뜻이다). 오락프로 역시 '생명연장의 꿈'은 튼튼한 장(腸)에 달렸다.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한다. 빠져나가야 할 것이 고여 있으면 병이 된다. 초기에 발견했을 때 손을 쓰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방송사의 정기개편은 매년 한 두 차례 건강검진을 받는 것과 같다. 당뇨.고혈압, 심지어 초기암 발생 여부까지도 잘 관찰해야 한다.

제때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시청자가 자칫 치매에 걸린 프로를 보게 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TV세상에는 안락사가 필요한 경우가 더러 있다.

'전국노래자랑'이나 '체험 삶의 현장''TV는 사랑을 싣고' 등의 프로가 오래 가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기본욕구를 잘 읽어낸 결과다. 사람들 앞에서 한번 놀아보고 싶은 욕구, 늘 하던 직업과 다른 일에 한번 자신을 빠뜨리고 싶은 욕구, 그리고 사랑(존경)했던 그리운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욕구 등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 없는 보석 같은 정서이다. 문패는 달라도 '좋은 친구들'이 되기 위해 이사철마다 집 안팎을 정성스레 손보는 이웃들은 아직 많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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