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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고은의 호기심 취재파일] 한옥 게스트하우스의 체험살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 한옥 게스트하우스 ‘북촌마루’에서 한복을 입고 차를 마시며 한국문화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20대 중국인 관광객들. 2 북촌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현대와 근대가 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느낌을 받는다.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을 읽으면 새삼 사대문의 위치가 궁금해진다. 교육열이 높고 억척스러운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사대문 안이 내려다보이는 ‘문 밖’ 동네에 살면서도 아이를 ‘문 안’의 학교로 보내려 애쓴다. 엄마는 ‘문 밖’ 동네에서 근 10년의 세월을 보내지만, 한번도 ‘문 안’으로의 입성(入城)을 잊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 시대든 ‘문 안’은 늘 중심이었다.

북촌 역시 문 안의 동네다. 가회동, 송현동, 안국동, 삼청동 등이 속한 이 북촌 일대는 예부터 힘 있고 명망 있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2014년 5월의 북촌을 설명하려면 이제 지리적인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북촌은 오래전부터 그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하면서 이제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촌 안에 해당되는 지역구를 나열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더 정교한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가외동 31번지 ‘북촌 6경’에서 바라본 북촌 일대의 기와집. 북촌은 모든 시대상이 켜켜이 쌓여, 난개발의 역사까지도 끌어안은 자연스런 매력이 있다.

공항에서 북촌까지, 직통으로 연결된다

지금 북촌은 서울 시내에 단 하나뿐인, 복제될 생각이 없는 간판들로 채워져 있다. 골목골목 다양한 핸드메이드 공방과 갤러리가 가로등처럼 박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몇 십 년째 같은 메뉴를 무심한 듯 팔기도 하지만, 홍대앞 인디밴드의 이름에 견줄 만큼 재기발랄한 메뉴들도 생겨났다.

물론 북촌도 변하고 있어서 터줏대감이었던 서점이나 참기름집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들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북촌은 그리 쉽게 몰개성의 공간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계동 골목의 추억 서린 문화당서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누구나 다 알 만한 편의점이 간판을 붙였다가 결국 물러났다.

계동 골목을 걸으면 서울 시내 최고령 목욕탕 중의 하나인 ‘중앙탕’이 낡은 몸체로 여전히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는 걸 볼 수 있다. ‘최 소아과’의 간판 역시 많은 이가 꼭 보고 가는 명물이다. 목욕탕과 소아과라니, 특별할 것 없지만 그 나이가 매력이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낡아가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우리가 박물관에 두는 것들도 비슷한 기준 아니던가.

인력거가 골목골목을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두 바퀴가 사람의 두 발보다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라 편안하다. 두 발로 자박자박 걷든, 두 바퀴 위에서 편안하게 흐르든, 어떤 형태로든 이 골목을 구경하는 속도는 비슷하다. 쉽게 말해서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랄까. 이 골목을 걷는 건 오늘보다 조금 더 뒤처지기 위해서다. 조금만 도태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그래서 달리고 살피고 또 달려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마음 놓고 뒤처지는 느낌은 생경하다 못해 산뜻할 지경이다.

관광지로서 서울의 매력 중에 하나는 다채로운 대도시라는 점인데, 그중에 한 축을 분명 이 북촌 일대의 골목들이 ,떠맡고 있다. 머리색도 피부색도 언어도 보폭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이 일대 골목을 걸으며 점점 뒤처진다. 그러다 곳곳에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건물들, 특히 한옥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맨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살 냄새가 나는 한옥, 같이 늙어온 한옥, 그런 집들이 북촌에 있다. 북촌8경 역시 이 일대의 골목길을 두 발로 거닐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생활공간과 관광동선 사이에 사소한 약속이 필요해지기도 했다. 열린 집 문 틈새로 카메라를 겨누지 말고, 확성기나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들이다.

북촌의 일상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이벤트일 수밖에 없지만,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잠깐이나마 북촌의 밤과 아침을, 오후와 저녁을 경험해보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일파티나 돌잔치 장소로 북촌에 위치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팬클럽 회원들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리는 경우도 있다. 해외 팬들과 스타의 만남을 고려한 결정일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한옥 체험은 숙박 그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북촌에는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외국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북촌마루’ 장독대 위에서 북촌 일대의 고즈넉한 정경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 여행객 부부.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외국인들은 다듬이돌 두드리기, 한글 붓글씨, 한복 입어보기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한다.

밥도 옷도 잠도 한국식으로

재동에 위치한 한옥체험살이 안내센터로 찾아갔다. 체험살이란 ‘홈스테이(homestay)’의 우리식 표현.

안내센터에서는 북촌, 서촌, 혜화까지 이어지는 이 일대의 한옥게스트하우스 53곳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연결시켜준다.

한 중국인 가족이 숙박 매칭을 문의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할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사무장 이채환 씨는 여행객의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빼놓지 않는 것이 ‘온돌’에 대한 호기심, 혹은 기대감이라고 했다.

기와를 활용해 만든 게스트하우스의 정원. 한복을 차려 입은 외국인 관광객 부부는 한국식 가드닝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했다.

“온돌이란 게 있다던데, 거기서 자고 싶다고 말하는 여행객이 많아요. 온돌이란 단어까지는 모르더라도 ‘바닥에서 잔다던데, 그걸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죠. 온돌을 체험한 후에 다시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일본 분들은 특히 재방문 확률이 높아요.”

한옥 게스트하우스 ‘북촌마루’는 북촌8경 중 2경과 3경 사이에 위치해 있어 그 앞으로 지나다니는 인파가 많지만, 대문 앞에서 쑥스러워하면서도 “오른손이 위로 가게”를 신경 쓰는 외국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북촌마루에서는 다양한 한복을 준비하고 있어 머무는 손님 누구든 무료로 입고 사진을 찍어볼 수가 있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이 체험에 대한 반응이 좋다. 요즘은 봄볕이 따사롭지만, 추운 겨울에도 한복체험의 열기는 식는 법이 없었다. 한복을 입고 꼭 취해보고 싶은 포즈가 있는 손님도 많다.

앉아서 한쪽 다리를 세우거나, 손으로 하트 표시를 만들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얀티 씨는 큰절하는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대학생 같은 외모였지만 열두 살 딸을 둔 엄마이기도 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이번 한국여행 역시 혼자 가볍게 떠나온 것이다. 가방 안에는 돌아가서 딸에게 줄 선물들이 가득했다.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은 과거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순두부나 떡만두국 등 한국에 오기 전부터 알게 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들은 이미 한국식 아침식사도 먹고 나왔다. 모든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식사를 한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닌데 북촌마루에서는 한국식 아침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에 머물렀던 일본 손님 미즈노타쿠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북촌마루에 손편지를 보내왔다.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도 더 예쁜 한글이 돋보이는 편지였는데, 그는 서울에서 먹은 음식 중에 최고를 마루에서 먹은 아침식사로 손꼽았다. 한국식 집밥의 힘이다.

아침식사 때 외국 관광객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디테일이 되살아난다. 젓가락질이라든지,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다든지 하는 사소한 장면들 말이다. 북촌마루의 사장 김성일(43) 씨는 아침마다 밥을 먹다가 본의 아니게 젓가락 사용법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노랫말도 있듯이 사실 젓가락질 잘한다고 밥 잘 먹는 건 아닌데, 북촌마루는 한국인의 두뇌 발달이 완벽한 젓가락질에서 나온다고 믿거든요.” 김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두뇌발달도 두뇌발달이지만, 외국 손님들이 한국식 문화에 보이는 관심과 열정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전달하고 싶어진다.

북촌마루의 블로그에는 싱가폴에서 온 손님이 자꾸 X자가 되는 젓가락을 움직이느라 애를 먹었지만 결국에는 완벽한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고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어디 젓가락질뿐이겠는가. 돌절구라든지 맷돌, 재봉틀, 구절판찬합과 같은 도구들도 외국 손님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장독대에서 직접 장을 덜어 담거나, 난로에 군고구마를 구워먹는 체험들로 북촌마루는 늘 바쁘다.

한옥은 방과 방 사이의 열린 공간들이 더 아름다운 구조라 그 매력을 아는 이들이 한 채를 통째로 빌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아홉 명의 대가족 손님이 찾아오기도 했다. 부모님, 첫째 딸과 사위, 아들, 며느리, 막내딸과 세 살 난 손주까지. ‘마루엄마’로 통하는 북촌마루 안주인이 “매운 고추 좋아하시는 분?” 하고 묻자 말레이시아 대가족의 아버지가 번쩍 손을 들었다.

“많이 매운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빠, 진짜 맵대요.” 아이의 우려 속에서도 용감하게 한국의 고추 맛을 보겠다고 나선 말레이시아 아버지는 급기야 고추를 된장에 찍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연신 맵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소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맵든 말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영국인 사위는 말춤을 추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북촌스타일―한복을 입은 채로.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풍’의 배국진(29) 씨는 북촌에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님 중에는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금은 ‘불금’이니 ‘월요병’이니 하는 단어들에 무심하게 됐다. 이제 시간은 1박, 2박, 3박과 같은 단위로 흘러갈 뿐이다. 그는 미국과 뉴질랜드 유학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문화와 역사의 전도사처럼 통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좀 더 본격적이 되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가 매 계절, 번갈아 가면서 그의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8년쯤 시간을 보내다 그는 결국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됐다. 보통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20대 사장님들은 홍대앞이나 동대문 같은 지역을 선호하지만, 그는 북촌에 있는 한옥으로 터를 잡고 싶었다. 북촌은 인위적인 한옥마을이 아니라,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모든 시대상이 켜켜이 쌓인, 난개발의 역사까지도 끌어안은 곳이어서 더 매력적이었다.

손님은 여행 중, 한옥도 여행 중

“이 일대에 있는 부동산만 스물 몇 군데를 다녔어요. 부동산 문 앞에서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죠. 처음엔 정말 ‘1천에 50’이라든지 하는 용어도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몰랐거든요. 지금 이 집은 거의 마지막에, 딱 하루만 더 보자고 시간을 냈을 때 나타난 곳이에요.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옥에 있을 건 다 있죠.”

그게 지금 게스트하우스 ‘소풍’이 되었다. 지금은 트립어드바이저의 서울 게스트하우스 평가에서 평점 1위에 오를 정도로 능숙한 공간이지만 준비하는 동안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불이며 식기를 사느라 발품도 팔고, 반품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는 ‘마치 신혼집 꾸미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소소한 물품까지 신경을 썼다. 침구는 다섯 색을 골라 그 색이 들어가도록 주문하고, 수건은 호텔 것처럼 희고 두툼한 것을 고집했다.

한옥에 잘 어울리는 소품은 이곳 북촌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다. 처음에는 집에 있던 것을 다 가져왔다는 그는 찻상을 가리키며 이것도 할머니가 쓰시던 걸 가져온 거라고 했다. 저쪽에 놓인 꽃신은 할머니 친구 분이 신으셨던 것, 벽에 걸린 그림은 어머니 친구 분이 그려주신 것, 낮은 책상은 할아버지댁에 있던것…. 그는 내친 김에 다락문도 열었다.

“이 상은 저희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셨던 거래요. 할머니는 지금 돌아가셨는데, 쓰시던 물건이 많이 여기로 와 있어요. 여러 나라에서 오신 손님들이 실제로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끌어내는 기능도 해요.”

소풍의 투숙객은 95% 이상 외국인이다. 일부러 외국 손님만 받는 건 아닌데 숙소를 최소 3개월 전에는 예약하는 외국인들과, 빨라야 한 달 전에 예약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외국 손님들로 이미 자리가 차버리는 것이다. 예약 시기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 젊은 사장의 인기도 한몫 한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트립어드바이저, 에어비앤비 등의 온라인공간에서 이미 유명하다. 숙소 주인이라기보다는 ‘친구’가 되는 사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손님으로 왔다가 친구가 되어버린 사람이 많은 셈인데, 친해진 말레이시아 손님을 부엌에 걸려있던 징을 쳐서 깨우기도 했다.

한옥의 특징은 방 안에 앉아서도 문만 열어놓으면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것. 한옥은 계절에 따라 머무는 사람들의 패턴까지도 변화시킨다. 봄, 여름, 가을에는 북촌이며 홍대앞이며 동대문이며 활발하게 다니던 여행객들도 겨울이 되면 투어보다는 한옥 안에 콕 박혀 있는 걸 좋아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온돌 때문이다. “온돌이 좋다고 방에서 안 나오시는 분이 꽤 많아요. 등을 지지는 맛을 아시는 분들이죠.”

소풍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정유미(27) 씨의 말이다. 그녀는 몇 차례나 소풍 본채와 별채 사이의 10m 골목길을 빨랫감을 들고 오가다가 겨우 짬을 내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매일 몇 차례나 이렇게 빨랫감을 들고 본채와 별채 사이를 오가느냐’고 묻자 그녀는 헤아릴 수 없다며 웃었다. 7개월 전, 게스트하우스 소풍의 매니저를 두 명 뽑는다는 공고가 났을 때, 스물 두 명이 지원했고, 그중에 정씨도 있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다는 것은 아르바이트 이상의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쟁쟁한 지원자가 많이 몰렸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두 명의 청년은 이제 소풍의 손님들 사이에서 서울의 몇몇 지명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되었다. 정씨는 다양한 손님과 마주하다 보면 늘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북촌을 찾은 4인 관광객 가족은 담백하고 소박한 한국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프랑스 꼬마의 “잘 먹었습니다” 한국어 인사에 모두 즐거워했다.


활기찬 호객행위에 휩쓸리는 것도 신나는 경험

한옥에서 진행되는 여러 체험은 숙소와 손님의 유대감을 더 돈독하게 만든다. 소풍에서는 다도 체험을 진행한다. 5∼6명, 많게는 8명까지도 마루에 둘러앉아 차를 우리는 시간은 동행이 아닌 손님들 사이에서도 교류의 장이다. 찻물을 붓고 기다리고 온도를 신경 쓰고 또 옮겨 담는 그 과정을 각국의 손님이 진지하게 지켜본다. 몇 번이고 우려도 향과 맛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질 좋은 차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국진 씨가 강조한다. 평균적으로 이 다도체험 때 외국 손님들은 스무 번도 넘게 차를 우려낸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각 나라의 음식문화와 볼거리, 정치,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국경 없이 드나든다.

싱가포르에서 온 제인 씨는 평소 차를 자주 즐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도 체험은 이제껏 경험한 적이 없는, 몹시 새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서울에 오면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갖고 있었다.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팬이었던 그녀에게 서울의 한옥에 누워 <런닝맨>을 감상하던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소풍에서는 홍대앞 투어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북촌 일대는 물론이고 홍익대 주변의 맛집과 볼거리를 꿰고 있는 배국진 씨 덕분에 손님은 물론이고 매니저들도 덩달아 즐겁다. 광장시장 역시 외국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시장 초입에서부터 활기찬 호객행위에 휩쓸리는 것을 신나는 경험으로 꼽는 외국 관광객들도 많다. 광장시장으로 떠나는 손님들에게 배국진 씨는 이런 조언을 해준다. “한 집에서 배부르게 먹지 말고, 세 집 이상 조금씩 다양하게 맛봐야 합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은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날로 구체적이 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려는 관광객도 많고, ‘순두부라는 게 있던데, 반드시 그걸 먹고 싶다’라는 식으로 특정메뉴를 콕 집어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소풍의 한국식 아침식사도 하나의 여행코스나 마찬가지다. 열 가지 정도의 반찬과 함께 하는 집밥 외에도 비빔밥이나 유부초밥, 떡만두국 같은 메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유부초밥을 내면서 정유미 씨는 이런 설명도 곁들인다. “저희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소풍이잖아요? 피크닉이란 뜻인데, 이런 유부초밥 같은 걸 소풍 도시락으로 싸가기도 해요.”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한 부부는 그 설명을 듣고 한껏 들떠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럼 우리 아침부터 소풍 가는 거예요?” 초코파이는 소풍에서 손님들을 위해 제공하는 귀여운 간식이다. 그러나 소풍은 이런 한국의 대표간식 말고도 미고랭이라든지 육포, 로쿰 등 전 세계의 간식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테이머 댁 씨는 소풍에 머물렀던 최초의 터키인이다. 그는 여동생과 함께 한국여행을 계획했는데, 예약확인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부터 배국진 씨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 부부가 ‘북촌마루’의 마스코트 고양이 ‘북촌이’와 아쉽게 이별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북촌의 밤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다

“고구려 시대부터 한국은 터키와 형제의 나라였다”로 시작되는 배국진 씨의 메일이 시작이었다. 그와 그의 여동생이 북촌에 도착해 소풍의 대문을 열었을 때, 그들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터키 국기와 한국 국기가 나란히 꽂혀 있는 웰컴 사인보드였다. 환영한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터키에서 온 남매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을 느꼈고, 배씨 역시 생각지도 않았던 그들의 선물에 놀랐다. 그들은 배씨가 세계 도시마다 디자인이 다른 스타벅스컵을 즐겨 모은다는 것을 알고 이스탄불의 스타벅스컵을 가져왔다. 터키 디저트 로쿰도 함께였다.

북촌마루 역시 페이스북과 블로그 등을 통해 언젠가 올 손님들과 이미 거쳐간 손님들을 만나곤 한다.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이제 지리적 거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좁혀진 셈이다. 북촌마루를 거쳐갔던 손님들이 잊지 않고 묻는 안부인사는 ‘북촌이’에 대한 것이다. 북촌이는 북촌마루의 예쁜 고양이로, 이 게스트하우스뿐 아니라 골목 전체의 마스코트다. 페이스북 등에 자주 일상이 공개되는 북촌이는 이곳을 예약한 손님들에겐 한국에 있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모토도 ‘손님을 친구처럼’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어딘가로 갈 때, 소풍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배씨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에게는 이제 세계 곳곳에 친구의 집이 있는 셈이다. 배씨를 통해 소풍의 손님들끼리 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알고 보니 아는 사이였던 경우도 있다.

“전 돈을 받았는데, 이럴 땐 그냥 가게 되니까 좀 기분이 이상하죠. 고맙기도 하고요.” 어느 캐나다 여행객은 게스트하우스를 떠날 때 일정금액의 보증금을 건넸다. 캐나다에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이곳의 숙박경험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것. 물론 해외여행이 국내나들이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때로는 타국의 작은 숙소 하나가 그 여행을 결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이 가볍게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풍경이 흔들리는 건 누가 찾아왔다는 얘기다. 사람만이 아닐 수도 있다. 매순간 우리 삶에 찾아오는 바람, 햇살, 입김, 그림자. 정겨운 골목 끝에서 나는 북촌의 밤을 만났다. 밤의 북촌 골목들은 소문처럼 고요했고 이곳이 도심 한 복판임을 생각해보면 이 고요함은 기이할 정도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빌딩숲이 무성한 동네에 이렇게 낮은 지붕들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키가 낮은 만큼 풍성한 여백이 생긴 동네, 그곳이 북촌이다.

글 윤고은 사진 지미연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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