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고교야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야구의 원조는 미국이지만 고교야구는 1915년부터 고교야구대회를 연 일본이 효시라 할 수 있다.
현대적인 구기 「스포츠」는 거의 전부가 서양에서 나왔다. 축구·「럭비」·「골프」·야구 등 모두가 예외가 아니다.
여기 비겨 실내의 게임은 거의 모두가 동양이 「게임」발상지다.
바둑·마작….
서양사람들이 보다 동적이며 동양사람들이 보다 정적인 때문에서였나 보다. 이상한 듯 하지만 개인주의의 서양에서 단체경기가 발달되고 오히려 동양에선 둘, 또는 혼자 즐기는 경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야구가 왜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 고교 때부터 대 인기인지도 짐작할 만 하다.
「팀웍」을 통한 단결력과 애교심, 그리고 "체력의 증진을 위해서 야구처럼 좋은「스포츠」도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의 나라 「스포츠」를 배워가며 즐겨야 했기 때문에 고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부터 중앙일보·동양방송이 주최하는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가 시작됐다. 이미 올해로 11회 째. 이제는 고교야구의 인기는 터질 것만 같이 높다.
당초에는 중계방송도 준결승 전 때부터나 했었다. 그러나 지난 7년 전부터는 첫날부터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짐작할 만 한 일이지만, 일본에서도 야구중계는 이미 1927년의 갑자원 고교야구대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밖에도 우리와는 사정이 비슷한 것이 많다. 갑자원 고교야구의 주최가 신문사인 것도 같다. 당초에 「아사히」조일)신문에서는 「라디오」로 중계방송 하면 관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망설였다.
막상 중계가 시작되고 보니 오히려 입장객이 늘기만 했다.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혼자서 현장중계를 한 것은 아니다. 구미정웅이라는 야구 통인 작가가 경기를 보면서 원고를 쓰면 그것을「아나운서」가 읽었다.
그러나 아무리 원고를 빨리 써도 경기진행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다음 경기부터는 「아나운서」의 즉석 묘사로 중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고교야구에 대한 인기가 폭발하게 된 계기는 지난 58년에 모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재일 동포 고교야구 「팀」의 친선경기이었다.
이때 선보인 것이 바로 장훈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이미「스타」였다.
그때 장훈 선수의 모습을 중계했던 박진세 「아나운서」는 오늘도 서울구장에서 「라디오」의 청중을 열광시켜 준다.
역사가 바로 전통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고교야구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 주구 있는 가운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는 하나의 뚜렷한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