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선한 명강…지금도 옆에 계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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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5월7일 혜남 고병국 선생님의 비보를 전해 듣고 아직도 그 충격이 생생한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내가 선생님을 알게된 것은 법대에 갓 입학했을 때 당시 학장으로 계시면서 민법총칙을 강의하실 때다. 육법전서만을 들고 들어오신 후 1백 분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시던 선생님의 명강은 놀랍고 신기롭기만 했다.
대학원에서는 직접 번역하신 「파운드」저의 『법률사관』을 중심으로 진지한 학문의 분위기를 보여주셨다. 이를 계기로『법의 새로운 길』을 공역까지 하도록 허락해주신 것은 평생의 영광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 아래에서 관으로의 출세를 본래부터 마다하시고 민사법을 전공한 후 조국에 돌아오셔서 연희전문·서울대법대학장·경희대총장 등을 역임하시며 이 나라의 법조일꾼들을 길러내시는 등 외길을 걸어오셨다.
헌법제정전문위원으로 그 기틀을 확립하셨는가 하면, 법전편찬위원으로 민법총칙을 기초 하셨고, 그 후에도 한국공업소유권 법학회장·한국법학교수회장 등을 역임하시며 지도적인 역량을 발휘하시기도 했다. 인간적인 면에서도 선생님은 풍류의 멋과 호탕한 성품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듣고 있다.
아직도 선생님께서 하실 일이 산적해 있거늘 가시다니…. 혜남 선생님은 가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대학 중에 들을 수 있었던『어!』 『어- 그렇지』식의 대답과 가식 없는 표정에서 나는 아버지의 정을 느끼기도 했고 지금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인자하신 혜남 선생님의 성품과 고매한 인격, 학문에 대한 정열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후학들의 영원한 사표가 될 것이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할 혜남 선생님의 유덕이 밑거름이 되어 그 숭고한 듯이 기필코 꽃피울 것으로 믿고 다짐한다. 그렇기에 못 다하신 일은 저희 후학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시길 빈다.
삼가 은사님의 회전에.<이범찬·성균관대 법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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