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톡! 인터뷰] 라디오 방송 30년 맞은 김기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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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수업시간에 몰래 그의 방송을 듣던 여고생들은 어느새 40대 주부가 됐다. 사연을 적은 꼬깃꼬깃한 엽서는 팩스를 거쳐 e-메일과 인터넷으로 대체됐다.

그래도 매일 같은 시간에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 역시 자신을 기다리는 벗들 때문에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는다.

MBC 라디오 '골든 디스크'(오전 11시)의 인기 DJ 김기덕(55)씨가 1일로 방송 30년을 맞았다. 과거 만 22년간 '2시의 데이트'를 진행,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DJ'라는 한국기네스 인증을 갖고 있는 그가 또 하나의 역사를 세우는 셈이다.

"라디오는 제 인생 자체입니다. TV 출연을 고집스럽게 안했는데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라디오는 상상력의 매체인데, 팬들이 제 얼굴을 보면 실망하지 않겠어요? 긴 세월,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전 행운아지요."

1973년 4월 1일, '2시의 데이트'의 전신인 'FM 스튜디오'의 진행을 맡았을 때만 해도 '팝의 전도사'로 운명지어질 줄은 몰랐다는 김씨. 당시 그의 신분은 아나운서였고 목소리만 빌려주면 되는 터였다. 하지만 75년 '2시의 데이트'를 맡으면서부터 전권이 그에게 주어졌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지식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기획자.PD.작가.DJ 등 1인 다역이 시작됐다.

김씨에겐 달인(達人)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는 지금까지 '팝'한 우물만 파 왔다. 방송 안팎에서 마찬가지였다. 81년부터 95년까지 매월 두 차례 'POP PM 2:00'라는 팝 전문 책자를 무료로 발간했고, '팝 음악의 세계'(1988), '끼에 살고 큐에 살고'(1991), 'DJ론'(1992) 등 팝 전문 서적도 냈다. 올해에도 '김기덕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Best 100'을 발간했다.

"그만큼 했으니 편하게 방송하겠다고요? 천만에요. 방송은 느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명성에 안주한다면 청취자들이 금방 채널을 돌리게 됩니다. 뭔가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30년간 안고 살아 왔어요. 지금도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뜁니다."

김씨는 늘 새로운 방송 형식을 개발해 왔다. 예를 들어 80년대 초 개그맨 박세민씨와 함께 만든 '팝 개그 드라마'는 10년 이상 진행되면서 음악개그의 기초를 세웠다. 방송에 PC채팅을 처음 도입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그의 방송 인생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씨는 95년 연예계 비리 사건에 휘말려 잠시 방송을 접어야 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사건은 무혐의로 마무리됐다.

"전화위복이라더니 결국은 제 길을 찾는 계기가 됐어요. 방송사를 떠날까 했는데 조금 쉬다 보니 방송일이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죠."

오는 16일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는 그의 방송 3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린다. 이소라.김건모.윤도현 밴드.배철수 등이 참석할 예정.

"선후배들이 고마울 뿐이죠. 제 기록을 후배 DJ들이 계속 깨 줬으면 좋겠어요. 라디오 파이팅!"

글=이상복 기자,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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