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은 "대기하라" 소방관은 "대피하라" … 우왕좌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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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차 추돌사고 수습 과정에서 승객들은 침착하게 대처한 반면 관계 당국의 비상대응 매뉴얼에 따른 조치는 늦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세월호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최초 사고 신고를 메트로 직원이 아니라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이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한 여성 승객이 가장 먼저 119에 신고했다” 고 말했다. 선로를 통해 빠져나온 일부 승객이 역 플랫폼에 올라서자 그제야 대피방송이 나왔다. 일부 메트로 직원은 승객들 대피를 안내하기도 했지만 뒤늦게 119에 신고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사고 후 5시간 정도 지나서야 정확한 사고 시간이 파악됐다는 점도 문제다. 매뉴얼에 따르면 추돌사고와 동시에 종합관제소에 신고가 들어가야 한다. 관제소 측이 사고를 인지한 것은 오후 3시32분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엔 이 시간에 사고가 난 것으로 전파됐다. 하지만 실제 사고는 2분 빠른 3시30분이었다. 관제실에서는 사고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119에 신고가 된 이후에야 사고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직후 바로 안내방송이 나와야 했지만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온 시각은 사고가 난 3분 후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객들은 캄캄한 객실 내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승객 구호 및 대피 유도도 늦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피안내가 없자 승객들은 직접 객차 내 문을 수동으로 열고 빠져나왔다. 역무원들은 승객들이 즉시 선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스크린 도어를 개방해야 한다. 하지만 스크린 도어를 개방한 것 역시 승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피 과정에서 오락가락한 관계자들의 지시로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도 연출됐다. 신모(25)씨는 “지하철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객실 안을 돌아다니며 제자리를 지키라고 했는데 뒤이어 나타난 소방관은 화재 위험은 없지만 대피해야 한다고 말해 그제야 객차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매뉴얼대로 하면 현장대책반은 사고 발생 45분 후인 오후 4시15분에 꾸려져야 한다. 하지만 상왕십리역에 서울시 대책반이 설치된 건 오후 5시12분이었다.

고석승·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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