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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백석·윤석중의 동시, 가난을 달랬던 마법 같은 운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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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태준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 『엄마 마중』의 한 장면. [사진 보림]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글, 유애로 그림
보림, 50쪽, 8000원

넉 점 반
윤석중 글,이연경 그림
창비, 36쪽, 1만원

엄마 마중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
보림, 36쪽, 1만1000원

음식만큼이나 그림책 역시 그 나라 문화의 총역량을 대변한다. 우리나라 육아 문화에서 좋은 그림책 읽어주기가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이제는 슬슬 대여섯 살 때부터 그림책을 접해온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우리 창작 그림책에도 큰 힘을 보탤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은 독자의 폭발하는 욕구에 비해 국내 창작그림책이 충분히 대응을 못하는 형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래 사랑받는 그림책은 좋은 그림도 필수지만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언어로 아이들을 열 번, 백 번 책으로 불러들일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 이럴 때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자들이 눈이 돌린 것은 바로 우리 근대 아동문학 초기에 나온 짧은 동화, 동시들이었다.

 『개구리네 한솥밥』(보림, 2001)은 백석의 동화시를 원안으로 삼은 그림책이다. 그의 동화시는 1957년 북한에서 나왔지만 언제고 이렇게 그림책이 될 운명이었을 테다.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개구리는 형에게 쌀 한 말 얻으러 길을 나섰다가 곤경에 빠진 곤충들을 도와준다. 그렇게 남을 도와주다 해는 저물고 쌀을 진 채 힘겹게 돌아오는 개구리를 이번에는 그 곤충들이 도와주고, 마지막에는 푸짐하게 한솥밥을 지어 나눠먹는다. 줄거리만 봐도 이리 흐뭇한데 일류 시인 백석의 마법 같은 운율이 더해지니 몇십 번을 읽어도, 아니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한솥밥 같은 그림책이 되었던 것이다.

 『넉 점 반』(창비, 2004)도 읽는 사람을 살짝 홀리게 하는 동시로부터 출발한다. 시계가 드물던 시절, 가겟집에 가서 몇 시인지 묻고 오라는 심부름을 간 아이가 ‘넉 점 반’(네 시 반)이라는 대답을 듣고서는 자기 혼자 한참 놀다가 해가 꼴딱 저문 후에 집에 돌아와 ‘시방 넉점 반이래’ 하고 당당하게 외친다. 해학 넘치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주인공 아이가 딴청을 피우면서도 심부름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 ‘넉 점 반, 넉 점 반’ 중얼거리는 것이 읽는 이한테도 옮아와 ‘넉 점 반, 넉 점 반’ 입에 붙어버리고 만다.

 2004년 소년한길에서 출간됐다 2013년 보림에서 재출간된 『엄마 마중』은 시는 아니지만 시처럼 응축된 이태준의 짧은 동화가 화가의 창작욕을 자극한 예다. 정거장에 차가 멈출 때마다 “우리 엄마 안 오?”라고 연신 묻는 아이 또한 가슴에 박혀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요즘은 캐릭터니 뭐니 하며 아이들을 중독시키고 어떻게 그걸 상품으로 연결시킬지 모두 연구하지만, 우리 근대 아동문학 초기에는 그런 계산과 상관없이 어린이의 마음에 자리 잡아 평생 친구가 되는 주인공, 친구들이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온갖 장난감과 선물 시장이 흥성거리는 시기다. TV 육아 리얼리티쇼를 보며 남의 집 아이의 귀여운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모두가 가난하고 없이 살던 시절에는 이렇듯 일급의 동시와 동화로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펴준 작가들이 있었다. 그 시절 그분들이 남겨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선물에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다.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

박숙경은

인하대 일본학과, 동대학원 한국어문학과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평론집 『보다, 읽다, 사귀다』(창비), 역서로 『비가 톡톡톡』(히가시 나오코), 『개를 기르다』(다니구치 지로)가 있다. 현재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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