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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방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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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한·중 정상이 만나면 빠지지 않고 논의하는 게 북핵(北核) 문제다. 우리는 늘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부탁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반응을 살핀다. 달라진 게 있는가 해서다. 이제까지 알려진 중국의 북핵 해법 3원칙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한반도의 비핵화→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의 순이다. 한데 최근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중국의 자세에 새 기준이 마련됐다. 단초는 지난달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공했다. 시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확실히 반대하며…현재 중국 측 방식으로 북한을 설득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새 기준이란 시 주석이 처음 언급한 ‘중국 측 방식’이다. 뭐가 중국 방식인가. 이 표현이 중국 외교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5월 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동평화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은 앞으로 자기의 방식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시진핑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도자를 잇따라 베이징으로 초청하고 있었다. 국제 분쟁에서 벗어나 조용히 힘만 기른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방침에서 벗어나는 행보였다.

 며칠 후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앙숙 관계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동시에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구촌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현재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를 포함해 향후 지역 갈등 문제에 개입할 때의 원칙을 정했다. 이것이 중국 방식이다. 무엇이 중국 방식인가에 대해선 지난 1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을 때 말한 게 가장 상세하다.

 왕이에 따르면 중국은 앞으로 지역 분쟁 해결과 관련해 다섯 가지 원칙을 견지한다. 첫 번째는 내정불간섭이다. 두 번째는 유엔의 틀 아래 활동한다. 세 번째는 걸핏하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며 평화적 수단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아울러 비합법적 방식으로 합법적 정권을 전복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시비를 따져 중국의 입장을 정하며 자신의 사리(私利)를 취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분쟁 당사국 인민의 뜻을 존중하되 관련 각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왕이는 또 중국은 지속 가능한 해법, 점진적인 방안, 근본적인 해결 등에 역점을 둔다면서 이런 것을 중국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진핑이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말한 중국 방식은 바로 이런 함의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접근 자세를 추론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내정 불간섭으로 중국이 북한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얼마 전 주미 중국대사 추이톈카이(崔天凱)가 “중국에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시키라는 미국의 요구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불가능한 임무)’”이라고 한 말의 배경이 된다. 두 번째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유엔의 결의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남에게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다자주의를 촉진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배운 방법이라고 미국의 중국 전문가 수전 셔크는 말한다. 미국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 스스로 자신의 손발을 묶었다. 미국이 국제규칙을 준수하면 다른 나라는 미국의 힘이 세지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중국도 자신의 부상이 다른 나라에 위협으로 비치지 않게 하기 위해 유엔 등 다자기구의 틀 아래서 움직이려 한다.

 세 번째는 무력 사용 반대로 북핵은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6자회담에 매달리는 이유다. 또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네 번째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선 중국 스스로 판단하며 혼란을 틈타 사리를 취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 단독으로 북한에 진주해 중국의 이익을 취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다섯 번째는 분쟁 관계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남북한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중국 등 관련국들의 이해도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시대 등장한 중국 방식이란 결국 다자주의 틀 안에서 대화로 관련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점진적으로 찾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 방식은 중국이 고민한 결과다. 중국의 입장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자연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도 나온다. 우리가 중국 방식을 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국 방식의 함의를 철저하게 분석해 우리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활용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로 눈여겨볼 게 중국의 다자주의 존중이다. 6자회담 무용론도 많지만 그래도 중국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효과를 보려면 다자기구를 통한 북핵 해결 노력이 계속 경주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