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임을 다하고 있나, 자문해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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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총체적인 비정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책임의식의 부재를 꼽곤 한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유종호(79·사진) 연세대 석좌교수는 자신부터 스스로 돌아보자고 했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 나 자신은 내 책임을 다하며 살았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 자신도 그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유 회장은 균형 잡힌 분석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이름 높은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다.

 - 국민들의 충격이 크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부실했다. 총체적인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번처럼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시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월호 말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저렇지 않을까 상상하면 끔찍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형 불발 폭탄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친 심정이랄까.”

 - 선장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 소설에서도 선장은 흔히 제일 먼저 배에 타고 가장 나중에 내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항해 중 규율과 질서 유지를 위해 징계권 등 강력한 권한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장은 유감스럽게도 스스로의 책임을 저버렸다. 개념도 원칙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만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나.

 “선장의 죄가 없다거나 처벌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모든 사람은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세월호 같은 사건을 두고 정말 허심탄회하고 단호하게, 또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타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문해 보자는 거다. ‘너는 어떻길래’라고 누가 묻는다면 실은 ‘나도 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며 일생을 지냈는데 누구를 탓하겠나. 이번 사고는 실은 우리 전체의 죄(罪), 우리 전체의 무책임의 결과다. 누구 한 사람 공격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 책임의식을 회복할 방법은.

 “이홍구 전 총리가 영국대사 직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영국 가기 전에는 우리도 조금만 노력하면 영국 같은 선진사회가 곧 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사람들의 행동, 사고방식,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났더니 우리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국민 각자가 책임의식을 갖추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우선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 스스로 귀하다는 자존감도 없다.”

 -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의 상층부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상층부의 문화와 가치관을 흡수하려는 게 아래층의 욕망이다. 의식개혁 운동 같은 것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될 일이 아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적 인간이 아니라 공적 윤리심이 강한 인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단기간의 강요된 교육으로는 책임의식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을 정상화해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도록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걸릴 일이다. ”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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