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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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프랑스」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부인이 연극을 보고 있었다. 그때 누가 찾아와서 남편이 방금 운명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 부인은 깜짝 놀라 달려나가더니 별안간 발길을 돌렸다. 매표구로 가서 『미안하지만 외출권 하나 마련해 주세요』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이 얼마나 연극을 좋아하는지를 풍자한 얘기 같다.
연극의 역사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이미 기원전 2천년의 고대 「이집트」에서도 연극이 있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연극의 역사를 보면 두 가지 형태를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재능 있는 예인이 주체가 된 이른바 「마임」, 다른 하나는 희곡과 같은 작가의 작품을 배우들이 공연하는 「드라머」.
그 어느 쪽이든 이런 형태의 예술은 오락적 흥미에 앞서 하나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신비한 것에 대한 주술과 같은 행위가 연극의 원형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샤머니즘」의 무속 같은 것을 보면 연극적인 요소들이 엿 보인다. 푸닥거리는 그 좋은 예이기도 하다. 사학자들은 이런 연극적인 무속은 2천여년 전인 고구려 시대부터 두드러진다고 한다. 백제시대의 음악이나 가무도 비슷한 경우다. 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처용무와 같은 가면극으로도 나타났다. 신라 말 최치원이 쓴 절구시 『향악잡영오수』의 경우는 그 시대의 가무백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신파극이나 신극 같은 「드라머」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역시 구미나 일본 등에서 유입되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연극계의 일각에선 우리의 고전극과 서양풍의 신극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상당한 열의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실험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고유한 예술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뜻 있는 일이다.
동랑「레퍼터리」극단의 『태』나 『하멸태자』등은 그런 작품가운데 하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을 「하멸」이라는 별칭으로 희화한 『하멸태자』, 비록 서양의 소재이긴 하지만 연출 등의 분위기는 사뭇 한국의 전통극을 방불케 한다.
「로망·롤랑」과 같은 「프랑스」의 문호는 『예술의 진정한 민중적 형태는 연극』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행동과 회화를 통해 직접 「어필」하는 연극 이야말로 민중예술의 극치인 것과 같다.
우리의 그와 같은 연극이 세계의 무대에 소개되는 것은 한편 뒤늦은 느낌도 없지 않다.
이제 본사의 지원으로 동랑「레퍼터리」극단에 의해 그 일이 올 봄에 성취되는 것은 여간 반갑지 않다. 서구인의 눈과 마음에 비치는 우리의 연극은 결코 호기심,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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