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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명문장 <14> 사진작가 강운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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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이다. 그들의 예술행위를 통제하거나 이끌려고 하는 전체주의적인, 정치적인, 국가주의적인 이데올로기들은 해롭다. (…) 그것들만이 예술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상황이나 다양한 집단들, 예찬자들, 파벌들, ‘이즘(-ism)’들이 만들어낸 미학 이론들도 예술가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해로운 것은 예술가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제한이다. 애초에는 신선한 발상이나 발견에서 출발했을 법한 것이 뻔한 것, 나아가 그저 습관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예술과 자유’

아날로그 사진을 고집하던 강운구씨는 요즘 스마트폰으로 찍은 작품도 전시한다. 가볍고 간편해 기록매체로 맞춤한 데다 원하는 이미지를 줍는 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 신문을 보다가 ‘박 대통령…’이란 제목을 보면 나는 멈칫한다. 묘한 역사의 흐름이 문득문득 지난날을 환기시키곤 한다. 나의 세대는 원조 ‘박 대통령’의 독재 지배를 강하게 받았다. 그때 자유는커녕 ‘공기가 희박’했다. 그럴 때 앞의 스타이켄 글을 읽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대던 자유!

 그즈음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 (중략)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김수영 ‘푸른 하늘을’ 중에서) 되새기고 있던 나에게 스타이켄은 피 냄새를 풍기지 않는, 그러나 다른 차원의 치열한 열기를 낼 수밖에 없을 예술가의 ‘자유’에 대해 말했다. 그 문장은 군사독재 치하에 있던 나에게는 먼 나라의 사치스러운 아득한 소리였다.

 그땐 책도 귀했고 내 주머니도 가벼웠다. 그러나 헌책방에서 뜻밖의 책을 만나면 횡재한 기분으로 주머니를 털거나 외상을 달았다. 여러 잡다한 책들 틈에 어디서 누구의 손때를 묻히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번쩍 뜨이는(그러므로 그것은 마법이다)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나서 빼보니 4X6배판보다 좀 더 크고 250쪽이 넘는 하드커버의 그 책은 묵직했다. 그래서 내겐 값도 하드하고 무거웠다.

 슬슬 넘겨 보니 다행히 밑줄 친 곳도 없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친 밑줄은 은근히 강요를 하는 것 같아서 싫다. 그런 강요를 당하는 것은 헌책을 사는 자가 피할 수 없는 비애다. 알고 있던 책은 아니지만 지금 아니면 영 못 만날지도 모를 것에 주머니를 털린 것은, 말하자면 내가 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쇄가 잘된 여러 사진 작품들 사이 사이에 글이 수록 된,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회고록 『사진으로 산 일생-A LIFE IN PHOTOGRAPHY』(1963, 더블데이 출판)은 나를 선택했다.

 요새는 뭐든지 돈으로 말해야 사람들이 혹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에드워드 스타이켄(1879~1973)은 저 세상으로 간 뒤에도 날렸는데, 2006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1904년에 찍은 ‘연못-월출’이라는 사진이 292만8000달러에 낙찰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까지 사진작품의 최고 가격이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이런 호사를 누린 이가 스타이켄이다.

 후기에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사진부서 책임자로 있으면서 저 유명한 ‘인간 가족’전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저명한 시인 칼 샌드버그가 그 전시회와 책에 글을 붙였는데, 그이는 스타이켄의 매부이기도 하다. 스타이켄은 룩셈부르크 출신의 미국 사진가로서 시기마다 적절한 적응을 해서 부와 명성을 다 누렸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였다.

 그런 스타이켄이 회고록의 마지막 장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 ‘자유와 예술가’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스타이켄이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을 나라의 한 젊은 작가였지만,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은퇴하는 노 사진가가 놀랍게도 자기 자랑이나 변명이 아니라 저 꿈같은 자유, 그이가 체험하고 깨달은 자유에 대해서 절절하게 토로한 지성에 경의를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는 듯이. 그리고 오래 새겨두려고 그 문장에 밑줄을 쳤다.

 몇 가지 이유로 스타이켄은 내가 내내 가슴에 품고 다닐 작가는 아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 대한 문장에 솔깃해한 대가로 그이는 여태껏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며칠이나 걸려서 70년대 초에 사전을 찾아 가며 밑줄 친 그 책의 그 페이지를 찾아냈다. 40년도 더 넘어, 다 저문 내가 다른 ‘박 대통령’ 시대에 다시 읽어보니 덤덤하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던 그 문장이 “뭐 뻔한 소리구먼”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도 나도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스타이켄의 이 문장은 시대가 바뀌어도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자유는 멀리 있는 귀중한 것이므로.

 사람들은 나를 ‘고집쟁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스타이켄의 말 중에서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해로운 것은 예술가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제한이다”라고 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고집은 또한 ‘제한’의 한 가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집은 상대에게보다는 부리는 이 스스로에게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없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자기가 가진 확신을 두고 하는 타협과 비타협 중에서 어느 쪽에 자유가 있을까. 습관은 타협이다. 스타이켄은 습관을 경고한 듯하다. 옳다고 믿는 생각을 한결같이 유지해 나가는 것을 누가 ‘습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이 바람 저 바람에 쉽게 휩쓸리는 세상에서는 고집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 신념을 지키려고 타협하지 않는 작가들의 지평에 자유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그 밖의 자유 주장을 강하게 하는 곳일수록 마침내 자유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있다면 왜 그런 자유만 있어야 하나? 늘 온갖 것에 다 자유가 있다면 굳이 자유란 말은 거의 소용없을 것이며 그립지도 않을 것이다. 내게 자유란 이따금 맛이나 살짝 볼 수 있는 것이지 양껏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즈음도 주머니는 여전히 가볍지만 책은 국내에서 출판한 건 물론 수입한 온갖 것들로 넘친다. 너무 많아서 예전처럼 벼르거나 눈독을 들일 겨를이 없다. 우리나라에, 책방에 없더라도 주문하면 바라는 책이 바로 온다. 그래서 책방의 마법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 많은 책 중에서 이젠 내가 거의 선택 당하지 못한다. 그게 좀 쓸쓸하다.

사진작가 강운구

포토저널리즘 개척

강운구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 년을 사진가로 살아왔다. 외국 사진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 한국인의 시각언어로써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한 우리 시대의 빼어난 다큐멘터리 사진가란 평을 듣는다. 1941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그는 사진과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 미혼으로 있다. 술과 담배를 전혀 못하고, 음식도 적게 먹는다.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북대 영문과 졸업.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강운구 마을 삼부작-황골 용대리 수분리』 『저녁에』 등의 사진집과 사진산문집 『시간의 빛』 『자연기행』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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