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저-퓰리턴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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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수영의 글은 무엇을 읽어도 언제나 시원하다. 자기의 생각을 서슴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검열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남들이 자기검열의 과정에서 지워버릴 것 같은 것만을 골라가며 적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항시 발랄하고 참신하고 직설적이다.
그의 글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곧 바로 서울로 가지 않는 길은 거짓과 비겁과 속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김수영은 산문언어의 곡사를 거부한다.
이것은 그의 독설 밑에 깔린 「퓰리턴」의 풍모 때문일까. 혹은 시인적 특권의 거침없는 발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그의 재능 때문이다. 서울과 같이 황폐한 풍요도시에서 50이 다되도록 20대 청년의 젊음을 구김 없이 간수할 수 있었던 김수영의 무구한 재능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매연과 허위와 정치·상업언어의 공해 속에서 그는 청청한 목소리로 인간과 인간의 진실을 옹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짓과 거짓을 가리는 격식과 억압에 반대하였다. 이 책 첫머리에 실려 있는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에서 『누구에게나 거짓말을 일체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미의 장남에게 보낸 편지에 이르기까지 진실구도의 세속 「퓰리턴」으로 일관했다. 「참」은 그의 믿음이요, 삶의 바탕이었다. 그에게 있어선 지식인도 참을 말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점 그는 예외적으로 떳떳한 지식인이기도 하였다. [유종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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